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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Aug 01. 2024

7월에게 안녕을 고하며

생각의 우주를 유영하며 사는 건 때때로 참 재밌다

사진은 올해 DMZ 피스트레인. 최애 락페. 매년 보는 퇴사 깃발이 새롭게 다가온다.

벌써 메모어와 함께 쓰는 세 번째 회고글. 웬만한 건 최대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다 제출하는 내가 목요일부터 노트북 앞에 앉은 이유는 단 하나, 펜타포트. 여름이 곧 락페스티벌을 의미하게 된 지 어언 삼 년차,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주말 내내 다른 세상에 있을 예정이다. 락페와 관련한 글은 또 나중에 별도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은근히 잦다.


2024년 7월은 어쩌면 새로운 챕터의 분기점이라 볼 수 있겠다. 회사라는 곳에 속하지 않은 채 한 명의 개인으로서 존재한 첫 번째 달이므로. 밀린 슬랙 메시지에 대한 셀프 리마인드 알림이 아닌, 창문을 열고 그날의 기분에 맞는 인센스를 골라 불을 붙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월요일에는 본부 주간 회의, 화요일에는 팀 싱크, 목요일에는 콘텐츠 QA, 금요일에는 런칭… 구글 캘린더에 반복적으로 꽂힌 일정이 사라지니 날짜 개념도 희미해진다. 이건 또 이거 나름의 평온함이 있지만, 평생에 걸친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된 내면이 때로는 “갓생”을 위한 “루틴”이 필요하다 소리치는 게 들리기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괜찮다고 되뇌인다.


밤새 그림을 그려도 되는 요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쉽게 말하자면 MBTI의 첫 글자가 E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하는 것을 선호한다. 까놓고 말하자면 “흥미로운” 사람들과 “흥미로운” 의견을 치고받으며 탐구하는 걸 즐긴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고 싶지만 잡지 못하는 편이지만, 상대는 꽤나 가린다. 재단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지에 집중한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굳이 꼽아 보자면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느냐, 그 지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시간이 많이 남는 만큼 요즘 친구인 에이든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일명 “선진국 백인 남성”으로서 많은 한국인이 부러워하는, 초록이 가득한 나라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지만 회색 도시로 옮겨 온 지금,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하다 말한다. 인간은 본인이 갖지 못한 것이 더 좋아 보이는 걸까?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철학적 논제에 대하여 가감 없이 언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라 공부는 자주 뒷전이 된다. 백그라운드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논점이나 해석을 순식간에 문장 중간에 꽂아 넣는다. 그러면 흥미가 확 돋는다.


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고 싶어 이러저러한 선택을 해왔다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정말 네 생각일까?”라는 문장.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사회, 환경, 유전, 교육 등 다양한 것에 영향을 받아 나온 산출물임을 안다. 모든 예술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일까? 퇴사 후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니 다시 챌린지가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누구인지가 궁금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해방촌 독립서점 인프로그레스

이어 인간이 변할 수 있다고 믿냐 물으니 우리가 하는 모든 건 변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잘 생각해 보면 밥을 먹고 거리를 걷는 것과 같은 일상의 모든 파편도 변화다. 내 몸의 세포와 포만감부터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의 위치를 바꾸지 않나? 그렇기에 내가 누구냐는 질문은 곧 고정된(fixed) 형태를 찾는 것에 가깝기에 적절하지 않다. 내가 지금 누구냐 물어야 유동적으로 흐르고 늘어나고 끊어지며 산산조각 나는 무형의 찰나에 집중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형태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은 이어진다.


7월은 흐르는 시간에 개의치 않으며 그때그때 원하거나 필요한 걸 했다. 나는 무언가 항상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본질이 아닌 응용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이기도 하며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이럴 때는 유일신 종교를 믿었으면 참 편했겠다 싶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물음표를 많이 띄운다. “물음표 살인마”라는 표현을 에이든에게 알려주니 되게 부정적인 표현이라며 썩 맘에 들어하지 않더라. 그렇지만 나는 물음표 살인마인 내가 좋다. 앞으로도 계속될 질문과 오답과 고민을 거듭하며 나아갈걸 안다. 결론은 항상 같다. 삶은 계속되며 인생은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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