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꿀잼, 공부는 노잼

공부가 제일 어려워졌어요

by 지구의 이방인

정말이지 폭풍처럼 몰아쳤던 교환학생이었다. 이번 글의 제목을 쓴 건 작년 가을쯤이었지만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교환학생이 끝난 1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작년 겨울 방학에는 독일에 있는 남편을 보러 잠깐 다녀오긴 했지만 아직 한 학기가 더 남아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얼마 전 모든 공부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 때리며 널브러져 있다가 이제야 끄적끄적 쓸 마음의 여유와 몸의 에너지가 생겼다. 제목에 쓴 것처럼 한국 생활은 꿀잼, 공부는 노잼이었다. 세상 느리고 불편한 유럽에서 살다가 세상 편한 한국에 오니 한국 생활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한국 음식, 편하고 빠른 행정 업무, 친절하고 빠릿빠릿하고 센스 있고 효율적인 한국 사람들 등 모든 게 사이다였고 편리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공부는 완전히 달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나를 맞이한 성의없는 크리스마스 트리. 도착하니 날씨가 한동안 이모양.
그래도 알차게 여행한 추크슈피체와 스위스 취리히.




난 왜 공포의 수강 신청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수강 신청일 아침에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내가 들으려는 과목들을 확인한 후 시간이 되어 수강 신청을 눌렀다. 그런데 이미 마감되었다는 팝업창이 떴고, 몇 분도 아니고 단 몇 초만에 내가 들으려 했던 과목들이 다 마감되었다. 내가 공부했던 대학은 교환 학생에게 수강 신청이 먼저 오픈되었는데 교환 학생이 신청할 수 있는 자리 수는 현저히 적었고, 교환 학생이 신청할 수 없는 수업도 있었다. 순간 떠올랐다. 집은 불안해 PC방에 가서 대기하기도 했던 수십 년 전의 수강 신청이 떠오른 것이다. 아직도 수강 신청은 이렇게 치열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강 신청'부터' 이렇게 치열한 거였다.

핀란드 대학의 수강 신청은 경쟁이랄 게 없다. 그냥 수업 시작 전에 언제든 신청해도 가능할 정도로 대부분의 수업은 여유가 있었다. 수강 신청 기간도 한국처럼 짧은 게 아니라 거의 한 달 정도여서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아 맞다, 수강 신청 해야지' 하고 수강 신청을 하는 것이 가능했고, 웬만하면 전공 수업은 다 신청해서 들을 수가 있다. 그 여유로움에 익숙해진 나는 수강 신청부터 이미 경쟁에서 나가떨어진 학생이었다. 한국 대학의 수강 신청은 왜 이렇게 치열하게 만든 거야.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는 수업을 신청할 수 없으니 1학년 수업부터 4학년 수업까지 자리가 있는 수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학년 수업부터 4학년 수업까지 다양한 수업 시간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1~2학년 수업은 괜찮았지만 3~4학년 수업은 이 대학교에서 1~2학년 때 배운 기본 배경 지식이 없으니 수업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모국어인 한국어인데도 외계어처럼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2학년 전공 수업을 다 듣고 3~4학년으로 올라왔을 테고, 교수들도 그걸 기반으로 수업을 진행했기에 그 속에서 나는 혼자 고요하게 그리고 엄청나게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과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섞어서 들을 수 있었는데, 교수가 영어로 잘 설명하지 못해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결국 드롭하게 된 수업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로 듣는 수업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다시 경험한 한국의 대학 수업은 좀 더 이론적이고 확실히 점수와 학점에 매우 중점을 두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험 점수를 잘 받고 어떻게 하면 과제 점수를 잘 받는지에 좀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 결석하면 F, 과제 몇 번 안 내면 F, 이렇게 하면 F, 저렇게 해도 F 등등. 물론 핀란드 대학의 수업도 성적에 관한 지침이 있고 학점이라는 게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 지침이라는 것은 학점보다는 수업이 어떤 내용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수업은 대부분 PPT를 교수가 읽거나 가르치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실습보다는 이론 위주의 수업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수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고 이론 위주의 수업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험 때 공부해야 할 양도 훨씬 더 많았다. 실습이 있는 수업의 경우 대부분 조교들이 실습을 진행했으며, 교수들은 이론 수업만 제공했는데, 정말 PPT를 읽기만 하고 나가는 교수도 있었다. 핀란드에서 수학 수업을 들었을 때 꽤나 독특하고 열정적인 교수가 있었는데, 삼각 함수를 가르치면서 단지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는 게 아닌 파이썬을 이용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어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해하는 건 별개이지만.


시험이 끝나고 모든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공개한다는 점도 약간 충격이었다. 평균이나 중간값을 공개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모든 학생들의 점수를 다 볼 수 있게 공개하는 점은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의 이름까지 다 공개하는 건 아니고 학번 일부만 공개하긴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경쟁을 더 부추기고 서로 더 비교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 게 아닐까. 나 또한 잠시 왔다가는 단기 교환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동안 '난 쓰레기야. 내 머리는 그냥 장식이었어'라고 생각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부를 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학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인지 이미 이쪽 분야에 깊이 침투해 버린 AI 때문인지 이번 학기에 발생한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한 수업의 과제 제출 후 조교가 몇몇 학생들이 제출한 코드가 똑같은 점을 발견하고 치팅이나 AI를 사용해서 과제를 제출한 사람은 솔직하게 메일로 자수하라는 공지를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다들 패닉에 빠졌는지 조교에게 문의 메일이 폭증한 모양이다. 사실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과제를 하는 학생은 이제 찾기가 어렵고, VS Code와 ChatGPT를 동시에 띄워놓고 과제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는 듯하다. 나 또한 ChatGPT의 도움을 받았기에 조교에게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조교는 치팅한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을 했다면서 연락받지 않은 사람들은 괜찮지만, 원칙적으로는 AI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마무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한 가지 더 놀랐던 점은 대학에서 신입생 학부모 설명회 현수막을 보았 때였다. 라떼는 대학교 입시 설명회라면 모를까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알아서 놀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취업했었던 것 같은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부모들에게 설명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전처럼 대학교 때 공부를 뒷전으로 해도 그냥저냥 취업할 수 있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라는 건 이해가 간다. 지금 내가 느끼는 한국 사회는 뭐랄까 자식을 잘 만들어내고자 하는, 잘 만들어내야만 하는 부모의 열망이 대학 입시를 넘어서서 자식의 인생 전체로 연장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얘기를 위에 써놓긴 했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엄청나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기도 했다. 수업 방식이 다소 획일적이라고 느껴졌음에도 정말 똑똑하고 엄청난 학력과 경력을 가진 교수들도 있었고, 학생들 중에서도 과장을 좀 보태서 수업을 듣는 뒤통수만 봐도 남다르고 똑똑해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사실 핀란드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다들 고만고만해서 서로 헤매면서 공부하는 분위기였는데, 한국에서는 뭔가 타고난 머리와 잘 학습된 정말 넘사벽이 느껴지는 학생들이 많았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졸업생들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던 세미나 수업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AI의 계속되는 발전으로 인해 IT 쪽이 무조건 취업이 잘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IT 쪽 채용도 주니어 포지션은 채용이 확 줄고 시니어 포지션은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잘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어쩌다 보니 가방끈이 길어져 이 나이까지 이런저런 공부를 해 왔지만, 이번에 공대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느낀 점은 공대 공부는 정말 적성이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공대 모드(mode)인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몇 년 전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수많은 비전공자 개발자들은 다 이쪽 일이 적성에 맞았던 것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공대 공부는 입학하면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공부할 것도 엄청 많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공부다. 코드 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하루 종일 혹은 며칠씩 붙잡고 씨름하는 일도 많으니 말이다. 한 교수님도 학생들에게 학생인 지금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하고 기초를 다져놔야 나중에 힘들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게다가 특히 IT 쪽은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트렌드나 최신 정보를 따라가지 않으면 금방 도태되기 쉬운 분야인 듯하다. 책을 한 권 쓰려고 해도 교정, 편집의 과정을 거쳐 책을 출판하고 나면 이미 트렌드가 바뀌거나 기술이 그 이상 발전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책을 내기도 어렵다는 다른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이게 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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