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1

대답이 무엇이든, 그 다음엔?

by 유연 은정원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에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허구이며, 일부 장소 또한 가상입니다.






세화는 그토록 바라던 칭다오로 갔다. 나는 린화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싼웬 시장과 기차역 광장을 차례로 지나 학교에 도착한다.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학생 수가 약간 늘었고 공부해야 할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외에 학교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수 적고 책 보는 걸 좋아하는 한족 친구가 생겼는데, 이름이 ‘쟈오-잉’이라 ‘잉잉’이라 불렀다. 잉잉과 나는 점심도 같이 먹고 체육 시간에 짝이 필요할 때도 늘 함께했다.

서로의 ‘묵언’을 존중하면서도, 좋은 시를 읽거나 교과서에 발췌본으로 실린 소설이 전문으로 실려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할 때면 누구 못지않게 수다스러워졌다. 쉬는 시간마다 딱 달라붙어 같이 책을 읽다가 머리를 부딪힌 적도 허다했다.


집은 반대 방향이라 방과 후엔 교문 앞길 버스 정류장까지만 같이 가는데, 그곳에서 잉잉은 길을 건너가고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 시간이 되면 유난히 세화가 보고 싶어진다. 드라마나 미래에 대한 몽상, 옌지와 가족 이야기 등 뭐든 재잘거리며 웃고 화내던, 희로애락이 분명한 오세화.


‘사춘기’가 내 몸과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책을 보고 글자를 외우고, 표준어와 린화의 어감을 각각 익히며 작문대회에 나갔다. 이제 어머니와 대화를 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랐지만,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평일과 주말, 아침과 저녁, 언제라도 웨이나 디에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 농번기가 지나 겨울이 되면 어머니에게 시간이 나겠지만 그때도 우리 곁에는 웨이와 디에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내가 밀린 이야기를 하려면 둘만 있을 긴 시간이 필요한데,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학교 PC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장만승의 옌지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의 전화번호를 네 개 알아냈다. 틀림없이 이 중 하나는 내가 찾는 그 식당의 번호일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몇 번이나 싼웬 시장 입구 정류장에 내려 전화 가판대까지 갔었다. 그러나 매번 전화번호를 단 한 개도 누를 수 없었다.

내가 번호를 누르려 하면 수화기가 내게 물었다.

장만승이 맞다는 걸 확인한 후엔 뭐라고 할 거니? 소식이 있느냐고? 대답이 무엇이든, 그다음엔?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드넓은 광장에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정처 없어진다.

내 얼굴이 희미해져버려 이제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개처럼 광장을 채운다.

안개 속에서 더듬거릴 수 있는 유일한 이정표는 어머니다. 먼저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 게 옳은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