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2
살려줘! 살고 싶다!
어른들이 아침저녁으로 바쁘고 상주하는 인부도 많아진 수확철.
방과 후 학교 앞에서 탄 시내버스가 노을 지는 기차역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붐벼서 밀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오른편 뒤쪽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버스가 10분 넘게 도로에 멈추다시피 했다. 내가 탄 버스는 인도와 가장 가까운 차로에 있었는데, 눈앞에 ‘린화 조선족 식당’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가 놓여있었다.
기차역 광장 근처의 길이란 사람들이 붐비는 게 일상이지만, 골목 입구 주변에 이상스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누군가 버스 창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순식간에 피부를 스쳤다.
창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여러 명의 공안이 골목 밖으로 줄지어 나왔다.
몰려있던 사람들이 길을 내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뒤이어 나오는 공안들은 둘씩 짝을 지어, 중간에 한 사람씩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
붙들려 나오는 사람은 총 다섯 명. 남루한 옷차림, 각지고 퍼석한 진갈색 얼굴, 앙상한 몸.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내가 아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다섯 명 모두 남자였고 새빨간 두 눈에서 눈물이 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날뛰었다. 그들은 모여있던 사람들이 길을 튼 방향으로 끌려가며 내 시야 안에서 꿈틀거렸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다섯 번째 사람이 격하게 몸을 흔들며 조선말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눈물이 흐르고 있는 내 눈과 다섯 번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살려줘! 살고 싶다!
마치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으르렁대 보지만 결국은 맥없이 끌려가는 산짐승의 뱃속 깊은 울부짖음.
온몸이 얼음강물이 된 것처럼 덜덜 떨렸다. 나는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줄지은 공안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냈던 사람들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인파 가운데 골목 어귀에 선 채 새파랗게 질려있는 ‘린화 조선족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멈춰있던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안도 소란스러워졌다.
조선 사람들이 몰래 왔다 들켰나보다고 했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을까, 라고 했다. 마지막 사람은 뭐라고 소리친 건가, 좀 어려 보이던데, 그 거지 같은 옷, 광택이라곤 없는 뾰족한 얼굴, 사람이 저렇게 깡마를 수 있나, 못 먹고 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누가 숨겨준 건가, 알면서 숨겨줬다면 그 사람도 잡아가겠지, 조선으로 돌려보내나, 돌아가면 죽는 건가, 가족들까지 모조리 죽인다지, 설마 그럴 리가, 죽을 때까지 탄광에서 일을 시킨다던데, 중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지, 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한동안 다리가 후들거려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섯 번째 사람의 충혈된 눈과 흐르는 눈물, 짐승 같은 목소리가 느린 영상으로 자꾸만 내 얼굴을 후려쳤다.
살려줘, 라는 벽을 긁는 메아리가 거센 바람처럼 온몸에 요동쳤다.
어머니의 그림자가 앞쪽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인다. 가까이 올 때까지 나는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뛰어와서 내 앞에 섰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니 오길래 나와 봤다. 어째 늦었니?”
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 우리 조용히,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이제는 좀 해야갔슴다.”
어머니는 나를 꽉 끌어안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번 수확철이 지나면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 둘만 어딜 다녀오던지, 하다못해 반나절이라도 시간을 내서 다 이야기할 작정이라고 했다.
나는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을 추슬러 버스에서 목격한 일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우린 신분증이 있는 중국인이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진정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부리나케 ‘린화 조선족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북조선, 농장, 품삯, 다섯 중 하나, 고작 열세 살, 내쫓았다, 대형 식당, 허드렛일, 별안간, 공안 빵차, 농장 주인, 신고.
수화기 너머에서 이런 단어들이 들려왔고, 아주머니의 마지막 한마디에 참고 있던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 불쌍타. 짐승도 아니고 같은 말 쓰는 동포인데, 심정이 영 아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