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3
가슴은 눈물이 담긴 우물
다음 날 학교도 전날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버스 승객들의 반응과 대동소이한 말들이 교실과 복도에 떠다녔다. 쉬는 시간마다 그 말들을 듣고 있는 게 힘들었다.
다섯 번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쿵쾅쿵쾅 울렸다.
점심시간, 학교 인터넷으로 메신저에 들어가니 세화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 어제 얘기 들었어? ]
[ 니 도대체 핸드폰 언제 사니? ]
세화의 메시지에 답도 하지 못했는데, 린화시 조선족 단체 대화방에 새로운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숫자가 속속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아는 사람들끼리 있는 작은 대화방이 아니라 지인의 지인들까지 섞여 있는 큰 방이다. 세화와 세화의 언니처럼 린화에 살다가 다른 도시로 간 사람들도 적지 않고, 나처럼 부모 중 한 명이 조선족이어서 포함된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중국어 단어가 섞인 조선글로 산둥성 중·동부의 일자리나 유머, 연예뉴스 등이 주로 올라오는데, 오늘은 어제 린화시 기차역 광장에서 있던 일에 대해 메시지가 폭주하고 있었다.
‘그곳’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들. 버스와 교실에서 들었던 중국어 말들이 모니터에 조선 글자로 새겨지며 올라왔다.
마침내 ‘거기 안 태어나서 정말 다행’까지 올라왔지만 메시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북과 남의 사람들, 그들의 조선족에 대한 태도로 이야기가 옮아갔다.
‘북한 놈들은 도와줘도 고마운 줄 모르고 조선족을 욕한다’고 했다. ‘숨겨주고 먹여주는데 돈까지 달란다’고 누가 그러자, ‘그래도 돈은 줘야지’라고 다른 누가 말했다.
[ 숨겨주기만 하면 돈 조금만 줘도 ]
[ 온갖 일 다 하자나 ]
[ 목숨 걸고 나왔는데 ]
[ 남한 땅 밟을 때까지 차비는 벌어야지 ]
[ 같은 말 쓰는 동포인데 숨겨주고 일 싸게 시키고 ]
[ 서로 나쁠 건 업슴 ]
[ 그런데 항시 궁금했는데, 남조선 놈들은 왜 ]
[ 북조선 놈들보다 우리를 더 싫어하고 무시하나 ]
[ 그 둘이 우리 무시하는 건 똑같다 ]
[ 우리도 같은 민족인데 지들끼리만 와 그런다니 ]
모니터에는 ‘북조선, 조선, 북한’, ‘남조선, 한국, 남한’이라는 저마다의 정서적 지명이 뒤섞여 올라왔다.
‘북한 놈들은 남한에 가면 그때까지 도와준 조선족을 다 잊어버리고 욕하고 다닌다’고 했다. ‘한국 놈들은 궂은일, 막일은 다 우리한테 시키면서 영화 같은데 보면 우릴 다 나쁜 놈 취급한다’, ‘조선족이 다 돈 떼먹고 사람 팔아먹는 사람들인가’라고 복받쳐 입을 모았다.
내 눈에 새겨진 날 것 그대로의 글자들은 차마 되새기기 싫어 억지로 잊었지만, 그 내용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 근데 북한 여자들 ]
[ 여기저기 팔려 다닌다는 얘긴 들었음 ]
[ 촌에 시집보내서 아 낳게 하고 ]
[ 죽을 때까지 농사지며 촌에 살아야 한다고 ]
[ 나도 들은 적 있다 ]
[ 그게, 조선족들이 그러는 거니? ]
[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
[ 야, 그건, 무슨 족이 아니라 ]
[ 나쁜 인간들이 그러는 거지 ]
[ 옳다. 어디에든 나쁜 놈은 다 있다 ]
[ 어디에든 평범한 놈이 더 많고 ]
[ 아 낳으면 도망 안 가고 계속 사니 ]
[ 나쁜 놈들이 계속 이용함 ]
[ 애 학교 보내려고 호적 올리려다 들통나서 ]
[ 송환 당한 여자도 많다더라 ]
[ 애 데리고 나온 여자들 여비 마련하는 동안 ]
[ 자긴 숨어 살아도 자식은 신분증 만들어줄라고 ]
[ 온갖짓 해서 돈 많은 중국남자 꼬셔서 같이 산대 ]
[ 그 자식은 자기 신분증과 엄마를 바꾼 거네 ]
[ 아버지가 알면 창자 끊어지겟슴 ]
[ 쯧쯧, 자식이 웬수 ]
[ 전부 딱하네 ]
[ 백번 생각해도, 중국에 태어나서 천만다행 ]
[ 사실 북조선만 아니면 됨 ]
PC실 사무원이 5분 뒤에 점심시간이 끝난다고 통보했다.
누구의 말일까, 가슴은 눈물이 담긴 우물이라는 말.
교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나는, 눈물 없이 우는 법을 터득했다.
가슴이라는 우물에서 눈물이 길어 올려지며 눈까지 올라가는 길, 눈물이 목구멍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꿀꺽 삼켜, 우물로 다시 내려보내면 된다.
교실에 들어와 앉은 후에도 나는 넘치려는 우물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오후 내내 입안에 미온의 짠맛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내려다봤다.
성명: 루샤오옌, 성별: 여, 민족: 한족, 출생: 1992년 …, 주소: 산둥성 린화시 타이핑(泰平)구 싼웬촌 …, 공민신분번호 …
눈까지 길어 올려진 우물이 비로소 체념한 듯 신분증 위로 뚝뚝 뛰어내렸다.
으스러져 흥건한 눈물 밑에서 어머니와 맞바꾼 플라스틱 신분증은 영롱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