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9 (최종화)
다시 한 번
중국에서의 마지막 새벽이 밝자 짐을 꾸려 일찌감치 밖으로 나왔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마침 올해의 졸업식 날이라, 입학식 때처럼 본관 광장 정면에 분수가 솟아 나오고, 서쪽에 수십 동이의 연꽃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튼튼한 초록색 잎 위에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연꽃이 하늘을 향해 피어있고, 공중에선 햇살과 분수가 흩어지며 연한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분수와 연꽃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치 학교가 내게 주는 이별 선물인 듯해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날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교문을 나선 후 천안문광장 남쪽 대로인 쳰먼따졔로 갔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어 봤던 그 거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걷고 싶었다.
나에게 비자며 비행기표를 준비하라는 어머니에게 난생처음으로 언성을 높였었다.
왜 살 생각을 안 하고 날 어디로 보낼 생각 먼저 하느냐고!
어머니는 먼 곳의 천둥처럼 으르렁거리지도 못하며 그저 따사로운 그 눈빛 속에 나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내 소원이다. 은주가 진짜 이름 되찾는 거. 내는 여기 있고 싶어.”
어머니 목소리 위로, 이곳에서 들려왔던 디에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가족 모두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어!”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순간 내가 인생 드라마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는지 아직 몰랐고, 이름을 되찾은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게 될 것도, 비 내리는 밤 흙더미 위에 쓰러져 이 모든 날을 그리워하게 될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베이징 여행 마지막날 저녁식사를 했던 췐쥐더 식당 문 앞까지 온 나는, 몸을 반대로 돌려 이번엔 천안문광장의 붉은 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천안문광장의 광활한 거리 길 끝까지 오성홍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게양되어 있었다. 새로 취임한 한국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을 경축하는 의미였다.
파란 하늘, 붉은 벽, 펄럭이는 태극기.
죽어가는 어머니를 이곳에 두고, 태극기 휘날리는 중국의 심장을 지나, 나는 이번엔 바다를 건널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뒤따라와 내 손을 잡아당겨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놓아 내 이름을 부른다 해도,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앞만 보면서, 다시 한번 얼음강물을 건너는 것이다. <끝>
중국 오성홍기와 대한민국 태극기가 함께 걸려있던 베이징 천안문광장 (사진 : 이은정, 2013.06.27.)
조금 다른 서사를 가진 탈북소녀 이야기
장편소설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은주가 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동시
한국에 정착하기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음 이야기로 찾아뵐 수 있길 고대합니다.
그동안 우리 리은주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