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8

은주 보거라

by 유연 은정원


다음 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나는 학교로 가서 ‘휴학 원인’ 칸에 ‘가정상황’이라는 뜻의 두 글자(家情)를 쓴 후 ‘휴학신청서’를 제출했다.

기숙사로 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물건들을 같은 방 친구들과 같은 과 학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곤 세화를 만나러 갔다. 나는 당분간 연락을 못 할 것이라고, 좀 오래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세화는 뭔 일인지 말도 안 한다며 눈을 흘겼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 연락하는 거 잊지만 마라.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좋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란 말이야. 헤헤헤.”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불면이었다.

나는 기숙사 방 입구 침대 위에 희미한 전등을 켜고 어머니의 하늘색 면주머니를 열었다.


북한에서 발급받은 내 출생증과 흑백의 돌사진, 어머니의 북한 공민증을 차례로 톺아 내려갔다.

부모님의 결혼 기념사진과 내가 네 살 때 찍었다는 가족사진도 오래도록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단단한 필체의 편지와 모르는 여자아이의 사진.

그것은 아버지가 사망하기 한 해 전 장만승을 통해 어머니에게 보낸 것들이었다.



련꽃 동무.

이 대답을 쓰고 있는 내 손이 떨리고 있소.

나는 동무와 은주를 버린 게 아니라, 국가를 버리지 못한 것이오. 내 신념 때문에 희망을 꿈꾸는 동무를 붙잡을 수가 없었소.

동무는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동무의 특별함을 묵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자부하오.

우리의 삶이 흩어질 것을 알았지만, 천운이라 생각했기에 동무를 보내준 것이오.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조국이 아닌 시절이라고 나는 끝내 믿고 싶소.

근래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가슴이 벅찼소.

동무가 고생이 많았소.

동무가 늘 말했던 것처럼 훨훨 날고 있소?

어디에서든 빛나는 인생을 살아주시오.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묻어두겠소.

나의 련꽃 동무.

나중에 만나면 잊지 말고 나를 원망해주시오.



은주 보거라.

백강 집 툇마루에서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별들을 올려다보았던 일들이 기억나니.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으면 늘 너를 생각한다.

많이 자랐을 테지만 네 어머니를 꼭 닮은 너를 아버지는 언제라도 틀림없이 알아볼 거다.

그러니 은주는 모순투성이인 이 아버지를 차라리 잊어도 좋겠다.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이 뻐근하다.

小燕……. 남쪽으로 날아간 작은 제비야.

봄이 너의 계절임이 틀림없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아내야 한다.

나중에 만나면, 지난날이 아닌 훗날을 이야기하자. 내 딸, 리은주!



아버지가 동봉한 ‘별도의 종이’에는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이름, 출생 및 사망 연도, 사망원인, 그리고 백강에서 탈북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이 정리되어 적혀있었다. 이어서 우리가 강물을 건넜던 지점을 그림까지 그려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가 한국으로 갈 것을 대비해 나에게 도움 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기록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가 가장 알고 싶은 정보인 ‘박희옥’의 신분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기록의 하단엔 ‘신변을 노출할 수 없는 장만승 선생의 이름은 사실 가명’이라는 말과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가족을 위해서라도 방송이나 신문엔 나가지 말고, 피치 못할 경우라면 가명을 사용해달라’는 당부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제일 아랫줄에 ‘주체 98년 초봄, 리진철’이라고 쓴 후 서명이 되어 있었다.

주체 98년이란 김일성이 탄생한 1912년을 원년으로 아흔여덟 번째 해라는 의미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렇게 해를 세고 있었다.



동봉한 여자아이의 사진은 아버지의 작은딸, 내 여동생이었다.

눈과 입매가 아버지를 꼭 닮은 그 조그마한 아이는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연분홍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서 살포시 웃고 있었다.

사진 뒷장에는 아버지의 필체로 여섯 글자가 적혀있었다.


리 연 주 李 燕 珠


‘샤오옌(小燕)’이라는 이름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작은 제비처럼 국경을 넘어 날아가 아버지 곁에 머무르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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