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7

난 이미 죽었다

by 유연 은정원


웨이가 등교할 때까지 ‘우리 셋’은 모두 평상시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당분간 베이징에서 지낼 거라서 여름방학 때 오지 못할’ 이 누나는 아쉬운 인사를 최대한 미루기 위해 웨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어머니가 거실에 나와 긴 소파에 디에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느린 속도지만 아직 거동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옆에 놓인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디에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봤는데, 네가 한국에 가면 조선 사람인지 확인하는 조사를 받게 된다고 해.


한 마디 한 마디 이어가는 디에의 목소리엔 고통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네가 여기서 계속 살려던 게 아니라, 다만 망자의 호적을 빌려 임시로..., 지내왔다는 증거로, 네가 출국한 다음 날 루샤오옌의 사망 신고를 할 거다.

네가 가지고 있는 여권은 그날로 무효가 될 거야.”


디에는 내가 한국에 입국한 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본 내용을 두서없이, 그러나 최대한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리고.... 지난주 날짜로 네 엄마의... 사망 신고를 먼저 했다. 그렇게 해야지만, 네 엄마를 안전하게…….”


디에의 단호한 목소리가 흐물흐물해지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문장을 완성했다.

“이곳에 뿌릴 수 있다.”


온몸이 진공 속에서 심장을 향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 방법밖에 없다고 우린 결론 내렸다. 네가 받게 될 조사가 ‘어떤 범위’까지 이루어질지, 귀화 신청을 하지 않고 여기 있는 ‘신분 위장자’인 나에겐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우리로선 알 아낼 수 없었다.

난 어차피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게 될 테니, 미리 사망 신고를 해달라고 내가 네 디에에게 부탁했다.


은주야, 잘 들어라. 난 이미 죽었다.

넌 내가 죽은 후에 디에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남조선으로 간 거야. 이 순서를 기억해라.

이미 죽은 사람에겐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할 테니, 나는 무사히 이곳에 뿌려질 거다.

너는 가서, 이제 너의 인생을 살아라.



어머니는 디에가 있는 자리에선 좀처럼 조선말을 하지 않는데, 은주라는 이름과 마지막 문장은 조선말이었다.

그러곤 내 뺨 위에 손을 얹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내 딸’이라고 중얼거렸다.

꾹 다문 채 웃어 보이는 입술 위로 눈물방울들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이상 참지 못한 짐승같은 울음과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이별 장면들을 뒤로 하고, 나는 이번 생의 마지막 같은 기분으로 싼웬 집을 나와 베이징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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