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게 뭔가요

작가의 정의를 위한 사유

by 시지프의 아내

"작가는 말이죠 천형의 길을 걷는 사람이에요."


이십여 년 전 드라마 작가 연수원을 다니던 시절 작가강사가 했던 말 중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문장이다.

대체 전업 작가의 삶이 어떻길래? 고결하고 매력적이고 품위 넘치는 세계가 아니었나.

덜컥 겁도 났지만 한편으로 그때의 나는 그 말에서 어떤 전율을 느꼈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두려웠고, 설렜고, 생애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온 마음을 쉽게 빼앗겼었다. 그래서 작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중년을 향해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가장 오래된 꿈이자 멀어진 삶의 끝에 달린 노스탤지어였다.

수십 년간 만들어 온 수 백 개는 족히 될 나의 모든 디지털 패스워드엔 작가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패스워드를 만들어 갈 때마다 그 단어만큼은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하루 몇 번이고 그 단어를 쓴다.

'작가'

그 단어가 마치 주문처럼 신호가 되어 온 우주를 떠돈다. 그리고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작가의 꿈'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힌 것일지도 모른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산을 넘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낮에는 일을 하고 숱한 밤, 이야기를 써 려가며 각종 공모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해갈의 기쁨을 선사했지만 그때 강사의 말대로 끔찍한 감정도 끌어오곤 했다.

새벽녘까지 취한 듯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은 아침이 되면 유치한 쓰레기가 되어 있었고, 그냥 날 때부터 작가인 듯한 그들. 그러니까 빛나는 이야기와 흉내 낼 수 없는 유려한 문장들을 뚝딱 써내는 그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깊이 절망했다.

그리고 서서히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쓰는 것에 나는 지쳐갔다. 폴더에 쌓여가는 '제목 없음'으로 생을 마감한 파일들만이 한때 작가를 꿈꿨던 흔적을 말해 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번듯하게 살아가기는 참 벅찼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맞춰 숨차게 따라 살다 보니 예술가의 감각과 호기심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천형의 길을 걷고 싶었던 철없던 여자아이는 어느새 복의 길을 걷기 위한 방법에만 몰두하는 철든 여자가 되어 있었다.


생의 에너지가 한 풀 꺾인채 흘러가던 나날 중,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반짝이는 생존코드 같은 걸 발견했다. 그냥 불쑥. 길 가다 벼락을 맞듯. 가슴 뛰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고 싶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 '시'를 써보자.'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나처럼 금세 지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세상에 남겨질 글을 쓰겠다고. 다시 지도를 그리듯 쓰면서 내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그렇게 나는 브런치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천지가 개벽할만한 놀라운 변화들이 꿈틀댔다.

돌고 돌아 나는 인생의 중반쯤에서 다시 천형의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전율과 절망 그리고 갈망과 해소를 반복할 테지만 하늘이 나에게 내린 형벌을 기껍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 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아마도 이러한 문장들이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들어 어떤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 속에서 찾은 담담한 고백, 누군가를 향한 위로, 깊이 있는 사유, 진실한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쳤으리라.


사랑, 성공, 친구, 행복... 이런 의미 있는 단어들을 나만의 생각으로 정의하면 인생이 풍부해진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에게 묻고, 경험하고, 수정하고 또다시 정의하기를 반복하며 나라는 존재를 단단하게 쌓아간다.

마지막으로 나는 작가라는 단어를 사유의 정원에서 갓 피워낸 나의 언어로 이렇게 정의해 본다.

작가는 말이죠. 천형과도은 삶에서 당신 혼자가 아닌, 나도 함께 걷고 있다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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