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지 못해 우울한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감정상태
나도 모르게 무력해지는 시기가 있다.
딱히 우울한 것도 아니고, 누가 날 건든 것도 아닌데 아무 사건도 없이, 아니 어쩌면 작은 것들이 쌓였던 건지 이런 감정이 들 때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기 싫은 게 하나 둘이 아니라 그냥 전체.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게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때 스스로를 달래주면 게을러지고, 채찍질하면 우울해하면서 게을러진다. 결국은 그냥 만족스럽지도 않은 허무한 휴식만 마냥 채우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사실 이 별거 아닌 글도 브런치에 발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력감이 오기 전 한창 긍정적인 날들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하는 일들도 정리하고, 이것저것 취미 생활도 꾸리며 책도 그럭저럭 접했다. 그러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쌀쌀해지듯 나에게도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원인 불명의 무력감에 빠졌다.
놀랍지도 않은 게 매년 꼭 이런 시기가 있다. 이 미스터리 한 게으름과 여행할 때면 변화무쌍한 내 감정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이 상태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리고 또 언제까지 지속될진 모르겠다. 다만 이번만큼은 억지로 쥐어짜지 않고, 달래 가면서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부담스럽지 않게 테스트했고, 지금도 ing다.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나와 가장 잘 맞는 방식. 대단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미래의 나, 그리고 나와 닮은 누군가가 조금 더 알찬 생활을 영위하길 바라며.
‘어떤 정보도 들어오지 않는다.’ ‘귀찮다.’
‘딱히 우울하진 않지만 이 안일한 현재에 대해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밀려온다.’
휴식이 행복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고, 지금 이 생활에 변화를 줘야 하는 건 분명히 맞다.
다만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사람은 부디 그 목표와 움직임이 거창하지 않아야 하며 늘어지는 내 생활을 탓하면 안 된다. 거창한 목표는 늘 실패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자책하며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세월들만 늘어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위인이 아니라고.
이번엔 대단한 걸 꿈만 꿨던 과거에서 벗어나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억지로)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목표 정리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 거지 같지만 필요한 무력감을 떨쳐냈다. 떨쳐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긍정까지 품게 된 듯하다. 겨울에서 봄이 오듯, 지금 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나의 슬기로운 무력감 대처 생활을 정리하고자 한다.
나의 무력감 탈출기는 아주 우연한 노출에서 시작한다. 모든 걸 스톱하고, 누워서 티비만 보다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빠져 저거 감상문이라도 써보자였다. 정해인의 팬은 아니지만 이왕 보는 거 이렇게 기록이라도 하면 이 나약함과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으며. 그리고... 운 좋게도... 그 감상평이 당시 인기 드라마라 트렌드를 반영했는지... 좋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게으름이 묻어나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 하는 행동, 드라마 보기, 게임하기, 단순히 먹고 자고 놀기 등. 내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게 아니라 그것을 글로든 마음속으로든 분석해보고, 기록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배움은 자기 안에 있는 걸 꺼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행복, 긍정, 불안, 일과 관련해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민한 인기 있는 강연을 보면 참 매력적이다. 가끔 테드를 보고 긍정적인 것들을 얻는다. 그러나 무력할 때는 눈에도 귀에도 입력되지 않는다.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그렇게 좋아했던 주옥같던 말들도 나긋나긋한 강요, 그리고 자장가 같이 느껴진다. 정말 세상을 이렇게 삐뚤게 볼 수 있나 싶을 정도. 그럼에도 좋은 강연은 피하지 말자며 몇 가지 다짐을 한 게 있다.
-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지금 나의 상황에 맞는 강연을 찾자. (강의 타이틀 & 소개에 제발 현혹될 것)
- 일단 연사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평소에도 듣기 어려운 분야의 테드는 부디 보지 말자.
- 결론과 실천을 강요하는 강연도 멀리하자.
- 일단 1분 봤는데 지루하면 정지에 손을 댄다.
이렇게 시도하다 보니 이렇게 무력한 상태에서도 재밌는 강연을 찾았다.
연사는 늘 상황이 닥쳐야 실행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자신과 같은 부류를 원숭이로 풀어내 웃음을 자아낸다. 강연의 결론이 딱히 없는 게 더 매력적이다. 늘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끝을 보려고 강연을 보는데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마음이 잡히지 않은 채로 보면 지루할 수 있다. 타이틀만 보면 뻔한 자기 계발의 표본인 듯 보인다. 하지만 고정, 성장 마인드셋이라는 아주 오랜 연구와 사례를 통해 새로운 성장 마인드 설계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놓는다. 꽤 흥미로웠기 때문에 유일하게 눈에 들어왔던 강연이었다. 이 역시 강연에서는 결론이 명확하지 않아 좋았다.
이후 그녀를 겨우 검색해(손가락을 움직이기 싫을 정로도 귀찮은 상태라) 관련 책이 이미 출간됐다는 걸 알았다. 그 책도 찾을 겸, 겸사겸사 서점에 가자라는 결심이 섰다! 작은 억지로 시작된 감상이 움직임을 끌어내는 좋은 징조라고 최면을 걸며.
평소 잘 가는 서점도 못 갈 만큼 심하게 무기력했기에 캐럴 드웩의 책을 일단 구매하고, 책을 읽는 건 너무 싫으니 표지만이라도 보고 오자고, 달래 가며 겨우 서점에 방문했다.
- 표지와 첫 페이지만 본다.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 혹시 우울한 건 아닐까 싶어 감성 에세이들 표지와 책을 훑어본다.
- 매번 낚이면서도 자기 계발서 코너를 다시 가 본다. 내 상황과 맞는 책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결국 실용서나 문학으로 돌아간다.
- 전에 영감 받았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잘 있는지 생사를 확인한다. 그리고, 괜찮다면 그때 왜 영감 받았는지 기억해본다.
확실하게 얻은 건 나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위대하신 분들의 자기계발서, 무조건 위로만 해주는 감성 에세이는 피하자였다. 감성 에세이를 보고, 오글 거리는 걸 보니 우울하지 않은 건 확실히 깨닫고 돌아왔다.
개취로 시장에 나와있는 자기계발서 70% 이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자기계발서만 읽었다. 그중에서 지금 나에게 남은 건 몇 권이나 될까?
위대하신 성장 에너지가 넘치는 자기계발서의 위인들은 실천한다. 끝없이 노력하고, 전진한다.
그러나 나는 나약하고, 취약하고, 게으르고, 흔들리고 어렵다. 책을 통해 자극받고 완벽한 기대를 갖는 건 순간, 헛된 희망을 품고 시도하다 놓을 때면 자존감이 의식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풍덩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서를 마냥 피하자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자기 계발서는 1도 안 읽고, 문학도서만 접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할 땐 계발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단, 이렇게 무력할 땐, 정말 지금 나의 상황에 딱 맞는, 나의 관심사가 담긴 계발서 1~2권만 집중해서 읽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런 책을 어떻게 찾을까?
- 인상 깊은 강연의 연사, 내가 담고 싶은 위인, 멘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자. 단, 딱 봤을 때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책이어야 한다.
-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나 관심사의 책을 찾아보자.
- 서점에 가서 표지, 제목, 속지에 혹한 책이 있다면 일단 사고 본다. 단, 2권을 넘기지 말 것 (2권이 넘어가면 충동 구매일 지도 모른다.)
-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이겨낸 적이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책을 추천받아 본다.
- 나와 맞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드는 행위가 귀찮다면 1~5쪽을 집중해서 읽는 걸 목표로 하자. 그리고, 한 단어든 한 문장이든 낙서 형태로 느낀 걸 써보자.
모두가 알겠지만 책은 잘 골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엄한 책을 읽으면 더 포기하게 되거나 우울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무작정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계발서를 보는 것은 정서적으로 전혀 도움되지 않는 듯하다. 혹시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샀다가 읽는데 너무 어렵고, 거부감이 든다면 바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 재테크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자.
위의 루트로 좋은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좋아하거나 인상 깊었던 작가의 책을 다시 훑어보는 건 어떨까? 다만 그때 느낀 감동을 다시 느낄 거라는 기대는 최대한 버리는 게 좋겠다. 상황이 다르고, 지금 마음 가짐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와 비교하지 않도록, 마음에 스크래치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자. 나의 경우에는 평소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쌓아놓고, 세상 편하게 엎드려 간식과 함께 즐기면서 봤다. 전에 표시한 인상 깊었던 구절만 다시 봤는데도 정체모를 행복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진짜 게으를 때 가장 힘든 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근데 '어디라도 나가서 뭘 좀 해봐'라는 지인의 말을 들으며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 있을까? 특히나 평소 클래스 참여나 커뮤니티 참여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런 곳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는 게 아주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아주 사소한 동네 원데이 클래스부터 가보는 건 어떨까? 내가 무력할 때 나가라도 보려고 잘 하는 짓이다. 요새는 네이버에서도 쉽게 우리 동네 근처의 다양한 클래스를 볼 수 있다. 그 경험이 좋다면 여러 가지 취미나 배움에 눈을 뜨게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엔 페이스북에서 먹방과 기사 눈팅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탈잉이라는 어플에서 원데이 향수 클래스를 발견했었다. 가까이 있진 않았지만 신규 강사 할인 이벤트가 있어 그걸 놓칠 수가 없었다. 움직임은 피곤한 일이었지만 시도했다. 그리고, 우연하게 들은 그 수업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어쩌면 이렇게 배우고 싶은 거 참지 말고, 주제 없이 재밌게 배워도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까? 굳이 목적성만 생각하며 배워야 할까? 진짜 재밌게 사는 자기 꿈을 찾은 사람들 보면 그냥 즐기는 걸 열심히 하다 보니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꼭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행하지 않으면 까먹게 되는 법이다.
새로운 취미의 배움을 다시 깨닫고 나니 평소에 듣고 싶었지만 시간, 돈 핑계를 대며 피해왔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래. 무력감을 해결한다는 핑계 삼아 잠시 돈과 상황은 무시하고, 다 해보자. 그렇게 우연히 듣게 된 수업 중에 크게 건진 것 하나가 마이크임팩트 이임복 강사님의 '책 쓰는 토요일'이라는 강의였다. 한 달 코스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나가고, 숙제도 해야 했는데 단순 책 쓰는 강의가 아니라 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강사님의 강의는 아무래도 '삶을 대하는 용기'가 초점이었던 것 같다. '내까짓게 뭐 책을 써!'라고 들을 엄두가 안 났던 강의였는데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온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심리적으로 알 수 없는 괴력을 얻었다. (아직도 나는 책 쓰려면 먼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이런 기회는 흔치 않고, 앞으로도 많지 않은 걸 알기에 마지막 수업이 특히 아쉬웠다. (언젠가 이 게으름이 더 치유되면 강의 후기를 올리리) 성공적이진 않지만 이 중 한 분과는 서로 일이 없다면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함께 하고 있다. 만날 때마다 에너지를 얻고,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인연을 지속 중이다.
새롭고, 긍정적이면서도 다양한 환경에서 왔지만 함께 같은 목표를 이뤄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다시 삶을 풍요롭게, 성장하며 살 수 있게 도와준다. 아쉽지만 만남과 프로젝트에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더 좋은 것 같다. 이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시한부인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이란 걸 하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남들이 다 하니깐 하는 토익 학원을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확고한 목표나 흥미가 있는 것을 정하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의 중요성은 알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또 세상에 없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을 싫어하고, 놀고 싶다는 당신은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뿐. 내가 그랬으니깐.
사회 초년생 때는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온 게 아닌데' '배울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새롭게 입사한 친구들도 다 이런 생각들을 한다. 그때가 아마 나의 사회 챕터 중 하나였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됐다. 그때 나에겐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 첫 회사니깐 이 회사를 더 다닐 것인가.
- 배울 게 없거나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해 볼 것인가.
- 여행이나 공부를 해보고, 충분히 쉬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나의 사회생활과 마인드는 싹 바뀐다. 아주 크게 나누자면 버티는 회사에서 좋은 사수를 만나 커리어로 아주 성공하는 케이스, 이 것 저것 방황하다 나의 꿈을 찾거나 아님 계속 방황하는 케이스.
주위에서 말렸지만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1년간 딱히 도와주는 사수 하나 없이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돌아다니며 열심히 노력한 첫 회사인데도 미련은 많이 남았다. 그래도 그때 생각하며 이걸 쓰는 지금도 울컥하는 걸 보니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후 역시나 나는 이곳저곳, 이것 저것 방황했다. 사회에서 택한 첫 선택 이후 삶은 전혀 윤택해지지 않았고, 저 마음이 드는 건 늘 똑같았다. 다닐수록 노력하는 마음은 줄고, 늘 딴생각을 했고, 회사에서 발전하기보단 외부에서 자꾸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얼마 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어떤 과장님이 말했다. 자기 팀으로 오지 않겠냐고. 나의 부족한 점을 아주 정확히 꿰뚫어줬고, 일로써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내 삶에 왔구나. 정말 감사했다. 조금 더 일찍 와줬으면 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제대로 된 마인드에 많은 것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지금 좋은 회사를 다니지만 이미 많이 치인 나는 회사라는 조직을 먼 미래에서 과감히 내려놓는 결단을 했다. 더 많은 상처를 쌓지 않고, 똑같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예전부터 일과 무관하게 배웠던 새로운 취미, 배우는 것들도 의미 있게 담으려 했다. 그러나 무력해질 때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됐다. 누리다 다시 무력해지고, 무력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실천하고, 또 게을러지고 쳇바퀴였다. 그럼에도 무력하지 않을 때 이 곳 저곳에서 잡다하게 만난 정보들로 나는 혼자 일하는 꿈을 꾸고, 브랜드를 만들어 아마존 셀러가 되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는 꿈을 꾸고, 좋은 상품을 소싱해서 많이 배워 한국에서도 판매하고, 다시 미국이나 호주에 여행이든 잠깐 살든 물건을 팔며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머무는 꿈. 그런데 우울함이나 무력함은 늘 올 때마다 크게 찾아와 모든 걸 다 멈추게 만든다. 잘 팔던 아마존 물건도 스탑 하고, 블로그를 키우고, 잘 될 시기쯤에 확 포기하고, 영어를 배우다가 다신 쳐다보지도 않고, 그러니 나에게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이 무력함이 큰 적이자 자식같이 잘 달래주고, 좋은 방향으로 끌어줘야 하는 친구인 것이다.
평소 다이어리, 플래너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다음에 찾아 올 무력함을 조금이라도 예방하기 위해선 정리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평소에 한 장 쓰고 덮는 플래너 말고, 의미 있는 플래너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것도 귀찮다면 '파이브' 같은 책을 사서 5년 목표를 한 번 기록해보자. (둘 다 하면 완전 베스트!)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다면, 작은 시도들을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의 이 게으른 챕터가 무사히 끝나길 한없이 기다렸을 수도 있다. 나는 위 순서로 깨우쳤고, 탈피했고, 치유받았고, 행복해졌다. 순서에 상관없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계기를 찾았으면 한다. 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이 무력감으로 새로운 걸 시작하게 되는 순간을 겁 없이 맞이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네가 찾아왔구나' 하며
이제부터 조금씩 그동안 누렸고, 앞으로 누릴 취미 생활을 브런치에 남겨봐야겠다. 다음에 무력할 나와 이 글을 우연히 지나치는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