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아니라 시가 되고자 한다.
살다 보면 가끔 설명할 수 없는 취약한 일들을 마주한다.
내겐 영화나 책의 줄거리, 인상 깊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일들이 딱 그렇다.
그 덕분에 말보다는 글이 좋고, 긴 글보다는 한 줄 서평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애착 가는 영화를 만날 때면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네가 왜 이영화를 봐야 하는지 구구절절 말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패터슨은 작년 분기마다 한 번씩 볼 정도로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보통 애착 가는 영화들은 감독의 세계관이 좋아 연이어 보는 경우가 많은데 패터슨은 인물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돌려봤었다.
보통 등장인물에게 매료된다는 건 자신에게 없는 성격적 이면을 주인공이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이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감탄 포인트가 돼서 돌아온다.
패터슨 주에 사는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 씨.
패터슨은 뉴저지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가난함이 묻어 나오는 동네다. 이 영화는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씨의 복붙 같은 일상을 지독하게도 반복해서 보여준다. 평일엔 6시 10분쯤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하고, 점심은 근처 폭포에서 맛없고, 허접하기 그지없는 도시락을 먹는다. 퇴근 후엔 개를 산책시켜준다는 핑계로 근처 바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 하는 게 그의 하루 일과의 끝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하루 종일 시를 생각하고, 틈틈이 시를 써내려 간다는 것.
시인이 아닌 시가 되고자 한다.
식탁에 올려진 아주 사소한 성냥갑이나 인생에 썩 도움되지 않는 사랑하는 여인으로 시를 써 내려간다. 시를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드러낼 마음이 없고, 일이나 관계에서 인정 욕구도 없다. 매일 같이 시를 쓰지만 시인이 될 마음은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이 시가 되고자 할 뿐.
편견 없는 세상에서 나 홀로 사는 패터슨 씨.
우리는 일에 대한 편견을 가진다. 공대생은 마케터가 되기 힘들 것이며 영업하는 사람은 말만 많을 것이고, 버스 드라이버는 시적 감성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 패터슨은 편견 많은 동네에서 시와는 무관한 일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성공과 명예에는 관심 없고, 시와 사랑하는 여인이 전부인 그. 어쩐지 이런 모습이 더 멋져 보인다.
욕심내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가졌다는 건
아무리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은 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그저 그런 관계에서도 우리는 보이고, 인정받길 원한다. 시시한 자기 계발서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에 야망을 갖고 욕심내길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패터슨 역시 누구에게 보이길 원한적은 없었지만 그가 기록한 시노트가 증발됐을 때 큰 좌절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한 만남과 선물로 다시금 시를 쓴다. 이미 시는 그의 삶이었기 때문에.
자기 꿈에 욕심내기보단 일상에 들여와 가꾸고, 진정 사랑할 줄 아는 것.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에 대해 반문해볼 수 있는 영화다. 시처럼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한 번이라도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