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평범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당신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앞선 장들에서 우리는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을 해부했다. 붓다, 스토아 철학자, 그리고 나이팅게일. 그들은 각각 시스템, 자원 배분, 데이터라는 차가운 무기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우리는 그들의 진짜 무기를 배우지 못했는가? 왜 우리는 붓다를 자비의 아이콘으로, 스토아 철학자를 인내의 상징으로, 나이팅게일을 희생의 천사로만 기억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진짜 무기는 당신을 너무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배하는 자들은 당신이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세상은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은 현상 유지를 원한다. 당신을 지금 그 자리에, 그 생각에, 그 소비 패턴에 머물게 해야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 당신은 시스템 입장에서 통제 불가능한 버그가 된다.
그래서 시스템은 당신에게 ‘감성’이라는 바이러스를 심어 놓았다. 감성은 당신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당신을 예측 가능하고 조종하기 쉬운 존재로 만든다. 붓다의 알고리즘, 스토아의 투자 원칙, 나이팅게일의 데이터는 이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이다. 그래서 시스템은 이 백신을 꽁꽁 숨기고, 대신 ‘감성 신화’라는 달콤한 위약(Placebo)을 당신에게 평생 먹여온 것이다.
차가운 이성은 왜 그렇게 위험한가? 왜 지배자들은 당신이 이성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성은 권위를 파괴한다. 권위는 신비감과 감성적 복종을 먹고 자란다. 교주, 정치인, CEO, 각종 멘토들. 그들은 당신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 그들의 카리스마에 감동하고, 그들의 비전에 가슴이 뛰게 만든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왜 믿어야 하는가? 근거 데이터는 무엇인가? 당신의 주장이 참일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라고 묻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권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들이 가진 것은 논리가 아니라 선동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모든 것을 평등한 검증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곳에서는 계급도, 권위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논리와 데이터만이 힘을 가질 뿐이다.
둘째, 이성은 책임을 요구한다. 감성은 실패에 대한 완벽한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가슴이 시켜서 한 일이야.”, “너무 뜨겁게 사랑해서 그랬어.”, “열정이 넘쳐서 실수를 저질렀어.” 얼마나 편리한가. 모든 실패의 책임을 ‘통제 불가능한 감정’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은 다르다. 만약 당신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률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는데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당신의 계산이 틀렸거나, 당신의 분석이 부족했던 것이다. 누구도 이 무거운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실패했을 때 남 탓, 세상 탓을 할 수 있는 감성의 도피처를 더 선호한다.
셋째, 이성은 재미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서사를 사랑한다. 특히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의 서사에 열광한다. 온갖 고난과 유혹, 내적 갈등을 겪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 이것이 잘 팔리는 상품이다. “주인공은 스프레드시트를 켜고 모든 변수의 기대값을 계산한 뒤, 가장 확률이 높은 안을 선택하여 성공했다.” 이런 이야기에 누가 돈을 내겠는가. 차가운 이성은 드라마가 없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감성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당신의 뇌에 반복해서 주입한다. 당신이 감성적인 서사의 소비자로 남아있어야 그들의 비즈니스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당신 주변을 둘러보라. 세상이 얼마나 교묘하게 당신의 감성을 자극하여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소비 시장: 광고는 제품의 성능을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의 감정을 조준한다. 이 차를 사면 자유를 얻을 것이고, 이 화장품을 쓰면 사랑받을 것이고, 이 아파트에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속삭인다. 당신의 필요(Needs)가 아닌 욕망(Wants)을 자극하여 비이성적인 소비를 유도한다. 감성적인 소비자는 기업에게 최고의 고객이다. 그들은 평생 빚을 갚으며 시스템의 훌륭한 부품으로 살아간다.
정치: 정치인은 정책으로 싸우지 않는다. 감정으로 싸운다. 공포, 분노, 증오, 희망. 이런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여 당신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 일단 우리 편이 되면, 당신은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편의 주장이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귀를 닫고, 우리 편의 실수는 어떻게든 감싸주려 한다. 감성적인 유권자는 다루기 쉬운 표다.
직장: ‘열정 페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당신의 열정을 착취하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꿈’과 ‘비전’과 ‘가족 같은 분위기’를 약속한다. 그리고 그 감성적인 보상을 대가로 당신의 시간과 노동을 헐값에 사들인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노동 가치를 시간당 급여로 냉정하게 계산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감성팔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계산하는 직원이 아니라, 열정적인 노예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계발 산업: 이 거대한 시장은 당신의 불안과 조급함을 먹고 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7일 만에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법’. 이런 메시지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무기도 주지 않는다. 그저 일시적인 감정적 위안, 즉 마약과 같은 효과를 줄 뿐이다. 당신이 계속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그들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희망을 팔 수 있다.
이제 알겠는가. 왜 그들의 진짜 무기는 감춰져야만 했는지. 붓다의 알고리즘, 스토아의 자원 배분, 나이팅게일의 데이터. 이 무기들은 당신을 해방시킨다. 당신을 소비 시장, 정치, 직장, 그리고 각종 감성팔이 산업으로부터 독립시킨다. 시스템은 이것을 원치 않는다. 세상은 당신이 적당히 불행하고,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감성적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당신을 계속해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감성 신화에 맞서는 첫 번째 단계는, 이 모든 것이 나를 지배하기 위한 정교한 설계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숨겨왔던 무기, 즉 차가운 이성을 내 손에 되찾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