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국밥 한 그릇. 그 실패의 경험이 이토록 짜릿한 이유
2025년의 서울에서 '점심 메뉴 선정'은 일종의 데이터 검증 과정이다. 우리는 식당 간판을 보기 전에 스마트폰을 먼저 본다. 지도 앱을 켜고, 상호명을 입력하고, 별점을 확인한다. 4.5점 이상이면 '안전'. 4.0점 이하면 '보류'. 리뷰가 100개 미만이면 '위험'.
우리는 단 한 끼의 식사에서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맛없는 밥을 먹는다는 것은 내 돈과 시간, 그리고 위장의 용량을 낭비하는 멍청한 짓, 즉 '최적화 실패'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검증한 맛집 앞에 줄을 서고, 모두가 맛있다고 합의한 메뉴를 시킨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검증 절차가 지독히도 피곤했다. 을지로의 낡은 골목. '원조 할매 순대국'이라는, 서울 시내에만 오천 개는 있을 법한 흔해 빠진 간판이 보였다. 유리창에는 먼지가 끼어 있었고, 점심시간임에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폰을 꺼내 검색해봤을 테니까. 아마 이 가게의 별점은 처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무작정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데이터의 허락 없이, 알고리즘의 보증 없이, 오직 내 두 발로 '미지(Unknown)'의 영역에 침입한 것이다 .
"어서 옵쇼." 주인 할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순대국 한 그릇을 시켰다.
5분 뒤 나온 국밥은, 내 예상보다 더 끔찍했다 . 국물은 미지근했고, 돼지 누린내는 잡히지 않았으며, 깍두기는 너무 시어서 군내가 났다. 심지어 밥은 어제 지은 것처럼 푸석했다. 맛집 앱의 리뷰어들이라면 *"최악입니다. 돈 아끼세요."*라며 별점 1점을 테러했을 맛이었다.
한 숟가락을 떴다. 입안 가득 불쾌한 누린내가 퍼졌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나는 웃음이 났다. 억지 웃음이 아니라, 배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묘한 쾌감이었다.
맛없다. 정말 맛없다. 그런데 이 맛없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내가 맛집 앱을 보고 찾아간 별점 4.8점짜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나는 내가 밥을 먹는 건지 데이터를 먹는 건지 헷갈리곤 했다. *"이 집은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수천 개의 리뷰가 내 미각을 세뇌했다. 나는 맛이 없어도 맛있는 척해야 할 것 같았다.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 별점 2.5점짜리(추정) 국밥집에서 나는 자유롭다. 나는 이 국밥을 마음껏 욕할 수 있다. *"맛 더럽게 없네"*라고 투덜거릴 권리가 나에게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한 '정답'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오답'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지 않는다. 쇼핑몰은 내 취향에 딱 맞는 옷만 보여주고, 유튜브는 내가 좋아할 영상만 틀어주고, 내비게이션은 막히지 않는 길만 알려준다. 삶은 매끄러운 실패 방지 시스템(Fail-safe System) 위에 놓여 있다. 덕분에 우리는 불쾌함, 불편함, 낭비를 겪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가 없는 삶은, 모험도 없는 삶이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 인간은 사육되는 가축과 다를 게 없다. 맛없는 국밥을 먹고 돈 9,000원을 날리는 경험. 이 쓰라린 '실패'야말로 내가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야생에 있다는 증거다 .
나는 미지근한 국물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 맛없는 액체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최적화된 세포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것 같았다. "긴장해. 주인놈이 예측 불가능한 쓰레기를 집어넣고 있어."
가게를 나오며 나는 계산대에 현금을 냈다. 주인 할머니는 여전히 무심했다. "맛있게 드셨수?" "아니요, 정말 맛없네요."
나는 속으로만 대답하며 가게를 나섰다. 입안에는 텁텁한 뒷맛이 남았지만,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나는 오늘 점심에 9,000원을 낭비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누구의 간섭도 없는 완벽한 주체성을 샀다.
그 실패의 맛은, 묘하게도 짜릿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