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흔들리지 않는 팬덤을 만드는 방법

내부 갈등 줄이고 건강하게 연대하기

by 닥터 F

"적은 내부에 있다."


역사상 모든 제국이 멸망한 원인을 뜯어보면,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분열이 결정적일 때가 많았다. 팬덤 제국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갑질에도 끄떡없고, 대중의 비난에도 똘똘 뭉치던 팬덤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내전(Civil War)'이 터졌을 때다.


"A 멤버 팬들은 왜 우리 멤버 욕해?" "올팬 기조 강요하지 마. 내 돈 내고 내가 좋아하는 멤버만 빨겠다는데 뭔 상관?" "뉴비들이 어디서 감히 훈수질이야?"


서로가 서로를 '시녀', '악개', '정병'이라 부르며 물어뜯기 시작하면, 그 팬덤은 끝이다. 회사는 이 꼴을 보며 팝콘을 뜯는다. 팬들이 지들끼리 싸우느라 회사 욕을 안 하니까.


이번 챕터는 팬덤의 생존을 위한 '내부 평화 유지 가이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뭉치는 게 아니다. 이기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뭉쳐야 한다. 감정을 빼고 철저히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법을 브리핑하겠다.


1. 트로이 목마: 악개(Akgae)는 팬이 아니다


팬덤 내전의 90%는 '악성 개인팬(악개)' 때문에 일어난다. 그들은 특정 멤버 한 명만 광적으로 좋아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 멤버의 앞길을 막는 방해물 취급을 하며 깎아내린다.


"그룹 해체하고 솔로 해라." "다른 멤버 파트 줄이고 우리 오빠 줘라."


그들은 이걸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건 사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의 투영'이다. 내가 좋아하는 멤버가 최고여야 하는데, 그룹 안에 섞여 있으니 그게 성에 안 차는 거다. 그래서 다른 멤버를 공격해서라도 내 멤버를 돋보이게 만들고 싶은 비뚤어진 욕망이다.


전략적으로 판단하자. 악개는 팬덤의 일원이 아니다. '내부의 적'이다. 그룹 아이돌은 '팀 스포츠'다. 축구에서 공격수 혼자 골을 넣을 수 없듯, 아이돌도 멤버 간의 케미와 밸런스가 맞아야 뜬다. 악개들의 소원대로 그룹이 깨지고 솔로로 나오면 잘될 것 같나? 팬덤 화력이 1/N로 쪼개져서 차트 광탈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악개들의 분탕질에 휘말리지 마라. 그들이 타 멤버를 욕할 때, 같이 싸우지 말고 조용히 '신고'하고 '블락(차단)'해라. 반응해 주는 순간 그들은 "내가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더 날뛴다. '무관심'만이 그들을 질식시키는 유일한 독가스다.


2. 올팬(All-Fan) 기조의 함정: 강요된 평화는 폭력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모든 멤버를 다 사랑해라(올팬 기조)"라고 강요하는 건 옳을까? 이것 또한 위험한 전체주의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똑같나. A가 더 좋을 수도 있고, B는 별로 관심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너는 왜 B 포카는 안 모아? 차별해?"라고 꼽을 주는 순간, 라이트 팬들은 도망간다.


건강한 팬덤은 '최애(Bias)'는 다르지만 '팀(Team)'을 지키겠다는 목표가 같은 사람들의 연합체다. "나는 A가 제일 좋지만, A가 속한 그룹이 잘되려면 B도, C도 필요해. 그러니까 같이 응원할게." 이 정도의 '전략적 지지'면 충분하다.


모두가 100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라. 누구는 100을 주고, 누구는 10을 줘도 된다. 중요한 건 그 합이 마이너스(안티)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팬덤은 고인 물이 되어 썩는다. "사랑해라"고 강요하지 말고, "함께 가자"고 제안해라.


3. 고인물의 독선: 뉴비 배척은 자살 행위다


어느 조직이든 오래된 사람들(Oldbie)이 권력을 잡는다. 팬덤도 똑같다. 데뷔 초부터 덕질한 고인물들은 자부심이 쩔어있다. "라떼는 공방 뛸 때 어땠는지 알아?", "이 떡밥의 유래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


그들은 자신들만의 용어, 규칙, 문화를 만들고 신규 유입(Newbie)들을 검열한다. 뉴비가 질문을 하면 "공지 좀 읽고 와라(핑프: 핑거 프린세스)"라며 면박을 준다.


이건 '텃세'다. 그리고 이 텃세가 팬덤을 늙게 만든다. 신규 유입이 없는 아이돌은 죽은 아이돌이다. 뉴비가 들어와서 엉뚱한 질문도 하고, 실수도 해야 팬덤에 활기가 돈다.


고인물들이여, 제발 '시어머니질' 좀 그만해라. 뉴비가 모르면 친절하게 알려주고, 떡밥을 떠먹여 줘라. "어서 와, 이 지옥 같은 덕질은 처음이지?" 하며 환영해 줘야 그들이 정착해서 새로운 화력이 된다. 당신들이 지켜온 그 자부심, 뉴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당신들과 함께 무덤으로 가게 될 것이다.


4. 사과와 용서의 기술: 내부 총질 멈추기


가끔 팬덤 내 네임드끼리, 혹은 파벌끼리 싸움이 날 때가 있다. 트위터에서 저격 글이 올라오고, 인용 알티로 조리돌림하고, 사과문 요구하고... 난리도 아니다.


냉정하게 묻자. 그거 해서 남는 게 뭔가? 이겼다는 정신승리? 팔로워들의 환호? 그동안 당신의 가수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팬덤 분위기는 개판이 되어 탈덕자가 속출한다. '상처뿐인 승리'다.


싸움이 났을 때 가장 스마트한 해결법은 'DM(Direct Message)'이다. 공개적인 타임라인에서 싸우지 마라. 남들 다 보는 데서 집안 싸움 전시하지 마라. 불만이 있으면 당사자끼리 뒤에서 조용히 해결해라.


그리고 실수한 사람이 사과하면, 쿨하게 받아줘라. "진정성 없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각서 써라" 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정의구현이 아니라 '가학적인 화풀이'다. 같은 편끼리는 실수 좀 할 수 있다. 죽을죄를 지은 게 아니면 적당히 덮고 넘어가라. 우리의 총구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회사)'를 향해야 한다.


5. 건강한 거리두기: '현생'이 우선이다


팬덤이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다. 하루 종일 트위터만 보고, 순위에 목매고, 회사에 화내다 보니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는 것이다.


건강한 연대를 위해서는 각자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생(현실 생활)'이 단단하게 받쳐줘야 한다. 내 삶이 무너지면 덕질은 도피처가 되고, 도피처가 흔들리면 견딜 수 없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


팬덤 활동하다가 지치면 잠시 떠나 있어라. (Rest) 그건 배신이 아니다. '재충전'이다. 네가 현생에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일 열심히 하고 돌아와야 다시 웃으면서 덕질할 수 있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말자. "너 왜 요즘 안 보여?", "탈덕했어?"라고 묻지 말자. "바쁜가 보네. 현생 파이팅 하고 와."라고 보내주자. 그래야 그가 에너지를 채워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오래가는 팬덤은 끈끈한 접착제로 붙인 게 아니라, 느슨한 고무줄로 연결된 조직이다.


6. 결론: 우리는 '목적 공동체'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가족도 아니다. 우리는 'OOO을 1등으로 만든다' 혹은 'OOO의 권리를 지킨다'는 목표를 공유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목적 공동체'다.


회사 동료가 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회사 때려치우나? 아니다. 일은 해야 하니까 참는다. 팬덤도 그래야 한다. 저 사람이 꼴 보기 싫어도, 내 가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참아라. 악개가 날뛰어도, 병먹금 하는 게 이득이라면 참아라.


그 인내심이 모여서 '단일대오'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단일대오가 회사의 벽을 뚫는다.


감정은 내려놓고, 목표만 봐라. 옆 사람 손을 잡는 게 징그러우면, 옷소매라도 잡아라.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자, 이제 서로의 멱살을 놓고 대열을 정비하자.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저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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