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보다 중요한 건 방향성
"우리 팬덤 쪽수가 몇인데 이걸 져?"
연말 투표에서 라이벌 그룹에게 역전당했을 때, 혹은 트럭 시위를 했는데 기사 한 줄 안 났을 때, 팬덤은 패닉에 빠진다. 숫자로만 보면 우리가 압도적이다. 앨범 판매량도, 팬카페 회원 수도 우리가 몇 배는 더 많다. 그런데 왜 졌을까?
패배한 팬덤은 흔히 "저쪽이 부정 투표를 했다"거나 "회사가 돈을 썼다"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당신들이 진 이유는 조작 때문이 아니다. '힘의 방향'이 정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는 '벡터(Vector)'라는 개념이 있다. 힘에는 '크기(Magnitude)'만 있는 게 아니라 '방향(Direction)'이 있다. 아무리 힘의 크기가 커도, 방향이 제각각이면 그 합력은 '0(Zero)'이 된다.
100명의 사람이 거대한 바위를 민다고 상상해 보자.
50명은 동쪽으로 밀고, 50명은 서쪽으로 민다. 바위는 움직일까? 아니, 꿈쩍도 안 한다.
10명의 사람이 한 방향(동쪽)으로 민다. 바위는 움직인다.
이것이 K팝 팬덤이 자주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다. 머릿수(크기)만 믿고, 방향을 맞추지 않은 채 우르르 달려든다. 그래서 에너지는 서로 상쇄되고,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아, 힘들다"며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
이번 챕터에서는 '오합지졸의 낭비'를 멈추고, 적의 급소를 뚫어버리는 '송곳 같은 조직력'을 만드는 법을 브리핑하겠다.
팬덤이 회사를 상대로 싸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바로 '백화점식 나열'이다.
성명서를 쓴다고 치자. 팬들은 그동안 쌓인 게 많다.
헤어 메이크업 촌스러움.
뮤비 분량 불공정.
자컨(자체 콘텐츠) 자막 퀄리티 낮음.
해외 투어 일정 무리함.
악플 고소 진행 상황 공유 안 됨.
이 10가지 불만 사항을 한 장의 성명서에 다 때려 넣는다. 그리고 트럭에 띄운다. 결과가 어떨 것 같은가? 회사는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산탄총(Shotgun)을 쏘는 것과 같다. 파편은 튀지만, 치명상은 입히지 못한다. 경영진은 보고를 받는다. "팬들이 이것저것 불만이 많답니다." 그럼 사장은 "적당히 달래줘"라고 하고 넘어간다. 무엇이 핵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이기는 팬덤은 '스나이퍼(Sniper)'처럼 행동한다. 지금 당장 가장 시급하고, 가장 명분이 확실하며, 회사도 들어줄 만한 '단 하나의 타겟'을 정한다.
Target: "아티스트 건강 악화에 따른 스케줄 조정." 이거 하나만 팬다. 성명서에도 이것만 쓰고, 해시태그도 이것만 걸고, 전화 항의도 이것만 한다.
모든 팬이 한목소리로 딱 한 가지만 요구하면, 회사는 공포를 느낀다. "이건 안 들어주면 진짜 큰일 나겠구나." 이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10가지를 다 얻으려다 0개를 얻는 것보다, 1가지를 확실하게 따내는 것이 승리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돋보기 실험을 해봤을 것이다. 햇빛은 따뜻하지만 종이를 태우지 못한다. 하지만 돋보기로 햇빛을 한 점에 모으면(Focusing), 종이는 검게 타들어가다 불이 붙는다.
팬덤의 화력도 똑같다. 각자도생하는 10만 명의 트윗은 그냥 '소음(Noise)'이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해시태그로, 10만 명이 동시에 쏘아 올리는 트윗은 '뉴스(News)'가 된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실트) 알고리즘은 '단시간 급상승'을 중요하게 본다. 하루 종일 띄엄띄엄 100만 건을 올리는 것보다, 1시간 동안 10만 건을 몰아치는 게 실트 1위를 먹을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런데 많은 팬들이 이 원리를 무시한다. "나는 지금 시간 되니까 지금 올릴래." "나는 저 해시태그 맘에 안 드니까 다른 거 쓸래."
이런 '마이웨이'가 팬덤의 화력을 분산시키는 주범이다. 총공(총공격) 시간이 정해지면, 네 개인적인 스케줄이나 호불호는 잠시 접어둬라. 초점이 맞지 않은 돋보기는 그저 유리조각일 뿐이다. 불을 지르고 싶다면, 빛을 한 점으로 모아라.
방향을 맞추려면 누군가는 '깃발'을 들어야 한다. 팬덤에서는 보통 '총공팀'이나 '음원팀'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팬덤 문화가 커지면서 이들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지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완장질 쩐다. 우리가 네 부하냐?"
물론 권력에 취해 완장질하는 총공팀도 있다. 그건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총공팀은 무보수로 갈려 나가는 봉사자들이다. 그들이 "지금은 스밍에 집중해 주세요", "지금은 투표해 주세요"라고 지시하는 건, 너희를 지배하려는 게 아니다. 효율적인 승리 루트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우회전하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기계 주제에 나한테 명령해?"라고 화내는 사람은 없다. 빠른 길을 알려주는 거니까 따르는 거다.
총공팀의 오더(Order)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 중에 장수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각자 뛰쳐나가면 그 부대는 전멸이다. 전략이 조금 부족해 보여도, 일단 '단일대오(Single File)'를 유지하는 것이 각자 흩어져서 싸우는 것보다 백배 낫다.
비판은 전쟁이 끝난 뒤에 해라. 전시 상황에서는 깃발 든 사람을 따라가는 게 생존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방향성을 망치는 최악의 빌런은 누구일까? 안티? 아니다.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아군'이다.
총공이 한창 진행 중인데, 탐라 한구석에서 싸움판이 벌어진다. "A 멤버 팬들은 왜 화력 지원 안 함?" "B 멤버 팬들이 먼저 시비 걸었잖아."
이 순간, 팬덤의 벡터는 '외부(회사/경쟁자)'가 아니라 '내부(서로)'를 향하게 된다.
화살표가 서로 마주 보고 충돌하면 에너지는 소멸한다. 회사는 이 꼴을 보며 샴페인을 터뜨린다. "지들끼리 싸우느라 우리 욕하는 건 까먹었네. 개꿀."
이기는 팬덤에는 불문율이 있다. "전시(총공 기간)에는 아군을 쏘지 않는다."
내부에 맘에 안 드는 팬이 있어도, 첩자(어그로)가 분탕을 쳐도, 일단은 무시해라. 지금 우리의 칼끝은 회사를 향해 있어야 한다. 옆 사람 뺨을 때리려고 손을 뒤로 빼는 순간, 앞을 향한 찌르기의 힘은 약해진다.
'병먹금(병신에게 먹이 금지)'은 평화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화력 손실을 막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다. 싸움닭들에게 휘둘리지 마라. 네가 봐야 할 곳은 옆이 아니라 앞이다.
자, 이제 실전이다. 우리 팬덤이 덩치만 큰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다음 3단계를 점검해라.
Step 1. 목표의 단일화 (One Goal)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가?
'사과문'인가? '스케줄 취소'인가? '멤버 탈퇴 방어'인가?
"다 해주면 좋고~"는 안 된다. 단 하나만 정해라.
Step 2. 메시지의 통일 (One Voice)
해시태그 문구, 성명서 문구, 트럭 문구.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복붙(Copy & Paste)해라.
"나는 이 표현이 더 좋은데?"라며 변주를 주지 마라. 알고리즘은 같은 텍스트가 반복될 때 '중요 이슈'로 인식한다. 다양성은 이때만큼은 독이다.
Step 3. 행동의 동기화 (Sync)
"밤 10시 정각에 올린다."
10시 01분도, 05분도 안 된다. 정각에 쏟아부어야 서버가 뚫리고 실트가 뚫린다.
너의 1분 지각이 화력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알람 맞춰라.
거대한 벽(회사, 대중의 편견, 경쟁자)을 뚫으려면 우리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넓게 퍼진 벽은 충격을 막아낼 수는 있어도, 무언가를 뚫을 수는 없다.
우리는 날카로운 '창(Spear)'이 되어야 한다. 수만 명의 에너지를 뾰족한 창끝 하나에 모으는 것. 모두가 같은 시간,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돌진하는 것.
그 엄청난 '운동에너지'만이 견고한 회사의 문을 부술 수 있다.
옆 사람을 보지 마라. 깃발을 봐라. 딴생각하지 마라. 구호를 외쳐라. 방향이 정렬되는 순간, 너희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무적의 군대'가 된다.
자, 전군 정렬. 목표 확인. 돌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