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혼자였다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새벽 4시까지 스밍을 돌릴 때, 억울한 루머와 싸울 때, 수십만 원을 모금할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트위터 타임라인 너머에, 나와 같은 분노와 사랑을 공유하는 수만 명의 '전우'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이것은 팬덤이 가진 가장 찬란한 '빛'이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대상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뭉친 이 거대한 연대감은 그 어떤 종교 집단보다 뜨겁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그 뜨거운 연대감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순식간에 '광기 어린 폭력'으로 변질된다.
"너 왜 우리랑 의견이 달라? 첩자야?" "화력 지원 안 해? 팬 맞아?"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감시하고 검열하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번 챕터에서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팬덤의 '어두운 민낯'을 직시하려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이 양면성을 얼마나 냉정하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먼저 밝은 면부터 보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파편화되어 있다. 학교 친구도 경쟁자고, 직장 동료도 비즈니스 관계다. 마음 터놓고 "나 이거 좋아해!"라고 소리칠 곳이 없다.
팬덤은 이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완벽한 '도피처이자 안식처'다. 내가 "우리 애들 너무 귀엽지 않아?"라고 글을 쓰면, 1초 만에 "맞아 ㅠㅠ 미쳤어"라고 맞장구쳐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뇌에서는 옥시토신(유대감 호르몬)과 도파민(쾌락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혼자서 뮤비를 보면 그냥 "재밌네" 하고 끝나지만, 콘서트장에서 5만 명이 떼창을 하며 보면 전율이 흐르고 눈물이 난다. 옆 사람의 흥분이 나에게 전염되어 감정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이 집단적 환희(Collective Effervescence)야말로 우리가 현생의 고통을 잊고 덕질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정의 배터리'가 되어준다. 내가 지쳤을 때 탐라(타임라인) 친구들이 나를 충전해 주고, 남이 지쳤을 때 내가 충전해 준다. 이것이 팬덤의 가장 아름다운 기능이다.
하지만 이 강력한 유대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바로 '동조 압력(Peer Pressure)'이다.
집단은 본능적으로 '이탈자'를 싫어한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사람은 집단의 결속력을 해치는 바이러스 취급을 받는다. 팬덤 내부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총공 시간인데 왜 딴소리해?"
"이번 앨범 20장 인증 안 하면 찐팬 아님."
"저 멤버 욕하는 게 대세야. 너도 욕해."
분위기에 휩쓸려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강요받는 순간, 팬덤은 '전체주의 집단'으로 변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마비된다. "저 멤버가 잘못한 게 맞나?"라고 의심이 들어도, 입 밖으로 꺼내면 '배신자'나 '시녀'로 낙인찍혀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을 당할까 봐 침묵한다.
솔로몬 애쉬의 선분 실험을 아는가? 명백히 길이가 다른 선을 보여줘도, 주변 사람들이 전부 "길이가 같다"고 우기면, 실험 참가자의 75%가 "같다"고 오답을 말한다. 팬덤 내의 여론 몰이도 이와 똑같다. 네임드(유명) 팬 몇 명이 "이건 화내야 할 일이야!"라고 분위기를 잡으면, 대다수의 침묵하는 팬들은 "아, 화내야 하는 거구나" 하고 따라간다.
이것은 연대가 아니다. '생각의 외주화'다. 나의 주관을 집단에게 맡겨버리는 순간, 우리는 스마트한 팬이 아니라 '생각 없는 좀비 떼'가 된다.
팬덤이 모인 커뮤니티나 트위터는 완벽한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으니,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서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우리 오빠는 잘못 없어. 회사가 나쁜 거야." "저 기사는 다 가짜 뉴스야. 안티들이 조작한 거야."
집단 내부에서는 듣기 좋은 정보만 공유되고(RT), 불편한 진실은 차단(Block)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화된다.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는 것이다.
이 상태가 심해지면 팬덤은 '현실 감각'을 상실한다. 대중들은 다 "저 아이돌이 잘못했네"라고 생각하는데, 팬덤 내부에서만 "우리는 억울해! 세상이 우릴 억까해!"라고 외치며 고립된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단적 망상'이다.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우리끼리 정신승리하는 것은, 내 가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켜 말라죽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쓴소리도 듣고, 팩트는 팩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열린 귀'가 필요하다.
팬덤을 가장 병들게 하는 것은 내부의 '완장질'이다. 네임드 팬이나 오래된 올드비들이 신규 팬들을 검열하고 가르치려 드는 행위다.
"스밍 인증 내역 까봐." "공카 등업 했어? 굿즈 샀어?" "말투가 왜 그래? 타팬 첩자 아냐?"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기준(스밍 횟수, 앨범 구매량)을 들이대며 '사상 검증'을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라이트 팬', '패션 팬(유행 따라 좋아하는 팬)'이라며 비하하고 배척한다.
이건 미친 짓이다. 덕질에는 자격증이 없다. 노래만 듣는 사람도 팬이고, 앨범을 한 장만 산 사람도 팬이다. 그런데 고인물들이 "너는 자격 미달이야"라고 쳐내는 순간, 팬덤의 확장은 멈춘다. 신규 유입이 들어왔다가 기겁하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완장질은 팬심이 아니라, '권력욕'에서 나온다. 팬덤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남을 통제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기억해라. 우리는 아이돌을 응원하러 모인 거지, 네임드 팬의 부하가 되러 모인 게 아니다. 누군가 너에게 "팬 맞아?"라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해라. "너는 검사관이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빛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답은 '느슨한 연대(Loose Ties)'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한 몸'이 될 필요는 없다. 목표(총공, 투표, 방어)가 같을 때는 뭉치고, 의견이 다를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쿨하게 흩어지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동조하지 않을 권리: 남들이 다 욕해도, 내가 보기에 아니면 욕하지 마라. 침묵해라. 그게 용기다.
검열하지 않을 의무: 남의 덕질 방식에 훈수 두지 마라. 스밍을 하든 말든, 굿즈를 사든 말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강요는 반감만 부른다.
팩트 체크의 습관: 탐라에 도는 정보를 무조건 믿지 마라. 출처가 어디인지, 교차 검증된 사실인지 확인하기 전까진 RT 버튼을 누르지 마라.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어야 한다. 내 얼굴이 더러운지 비춰주는 깨끗한 거울. "우리 지금 너무 흥분한 거 아냐?", "이건 좀 선 넘은 거 같은데?"라고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동료가 있어야 그 팬덤은 썩지 않는다.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거대 기획사라는 괴물, 악플러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 내부에서 폭력을 정당화하고,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맹목적인 집단이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괴물이 될 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폭력'이 아니라 '영감'이 되게 하자. "너 때문에 덕질이 즐거워"라는 말을 듣는 팬덤이 되자.
뭉치되, 휩쓸리지 않는다. 이것이 스마트한 팬덤이 지켜야 할 제1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