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조직력과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저 팬덤은 지들끼리 싸우느라 바빠. 놔두면 알아서 무너져."
이 말이 엔터테인먼트 회사 회의실에서 나왔다면, 우리는 치욕스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인정하자. 이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자, 가장 아픈 현실이다.
팬덤은 거대하다.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인 집단이다. 하지만 그 내부는 어떤가? 최애 멤버가 달라서 싸우고(개인팬 vs 올팬), 활동 방향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싸우고, 심지어 트럭 시위 문구 하나를 정하는 데도 며칠 밤낮으로 피 터지게 싸운다.
회사는 이 분열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한다. 이른바 '갈라치기(Divide and Conquer)' 전술이다. 특정 멤버만 푸대접해서 개인 팬들의 분노를 유발해 팬덤을 쪼개거나, 교묘한 공지로 내분을 유도한다. 우리가 내부 총질에 힘을 쏟는 동안, 회사는 유유히 책임을 회피한다.
흩어진 모래알은 바위를 깰 수 없다. 아무리 개개인이 똑똑한 '문화 주주'로 각성했다 해도, 그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 우리는 그저 시끄러운 '오합지졸(Rabble)'일 뿐이다.
Chapter 6에서는 팬덤을 단순한 '군중'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군대'로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을 다룬다. 이것은 친목질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기기 위해 '전열(Battle Line)'을 정비하자는 생존 전략이다.
(Chapter 6-1, 6-2)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말했다. "고립된 개인은 이성적이지만, 군중 속의 개인은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라. 확인되지 않은 루머 하나에 우르르 몰려가 욕을 퍼붓고,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들. 이것은 지성이 아니라 '광기'다. 회사는 우리의 이 광기를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명분으로 삼는다.
우리는 르 봉이 말한 멍청한 군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피에르 레비(Pierre Lévy)가 말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되어야 한다.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오류를 수정하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스마트한 집단'. 이 챕터에서는 감정에 휩쓸리는 '군중심리'를 경계하고, 냉철한 '집단지성'으로 진화하는 마인드셋을 다룬다.
(Chapter 6-3)
전쟁에서 이기려면 총을 쏘는 보병도 필요하지만, 지도를 보는 지휘관, 밥을 짓는 취사병, 통신을 연결하는 통신병이 모두 필요하다. 팬덤도 마찬가지다.
총공팀(Staff): 전략을 짜고 공격 시간(타임테이블)을 정한다.
금손(Creator): 홍보물과 영업 영상을 만든다.
번역계(Translator): 해외 팬들에게 지령을 전달한다.
스밍팀(Infantry): 음원 차트 최전선에서 싸운다.
그런데 많은 팬덤이 이 역할 분담(R&R)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을 따라 우왕좌왕한다. 그러다 보니 화력은 분산되고 효율은 떨어진다. 이 챕터에서는 팬덤 내부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법을 이야기한다. 체계가 잡힌 팬덤은 회사의 홍보팀보다 일 처리가 빠르다.
(Chapter 6-4)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 있지 않다. 안에 있다. 팬덤을 병들게 하는 '악개(악성 개인팬)', '어그로(분탕 종자)', '정병(정신병적 집착)' 러들. 이들은 "나만 내 가수를 사랑해"라는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으로 팬덤의 단합을 방해한다.
이들에게 휘둘려 "너네 멤버 때문에 우리 멤버가 피해 봤다"며 싸우기 시작하면, 그 팬덤은 끝이다. 회사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다.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어그로를 병먹금(반응하지 않기) 하는 법, 내부 갈등을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는 법,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의 다름을 덮어두고 '단일대오'로 뭉쳐 회사만 패는 법.
'벡터(Vector)'의 원리를 기억하라. 힘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방향이 서로 다르면 합력은 '0'이 된다. 우리의 모든 화살표가 오직 '회사'와 '차트'를 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조직력의 핵심이다.
전쟁은 쪽수만 많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100명의 오합지졸보다, 10명의 특수부대가 강하다.
지금 네 옆에 있는 다른 팬을 보라. 그는 경쟁자가 아니다. 취향이 조금 다를 수는 있어도, 같은 배를 탄 '전우(Comrade)'다.
옆 사람의 손을 잡아라. 그리고 대열을 맞춰라. 우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서 돌진할 때, 회사의 벽은 비로소 무너진다. 이제, 오와 열을 맞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