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2. 스토아학파 -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대한 ..

평정심은 너그러움이 아니라, 극단적 효율의 산물이었다

by 닥터 F

붓다가 시스템 엔지니어였다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최고의 펀드매니저였다. 그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돈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희소한 자원, 바로 ‘에너지’와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스토아 철학을 오해한다. 고통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금욕주의 정도로 생각한다. 이것 역시 감성 마케팅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그들은 인내의 아이콘이 아니다. 극단적 효율을 추구하는 투자 전략가에 가깝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기대수익률이 0이거나 마이너스인 곳에는 단 1의 에너지도 투자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평정심’의 진짜 정체다.


평정심은 너그러움이 아니라, 기대수익률이 '0'인 곳에 투자하지 않는 극단적 효율의 산물이었다


평정심.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 당신은 이것을 너그럽고 인자한 성품의 결과물이라 생각할 것이다. 틀렸다. 평정심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 배분의 문제다.


내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최악의 투자자였다. 나는 내 모든 감정적 에너지를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쏟아부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연인,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심지어 내일의 날씨까지. 나는 이런 것들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내 모든 에너지를 탕진했다.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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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분노한들 상사의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내가 밤새워 걱정한들 내일 비가 올 확률은 1%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투자한 막대한 감정 에너지의 기대수익률은 완벽한 ‘0’이었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에너지를 잃고, 시간만 허비하고, 결국 남는 것은 무력감뿐이었으니까.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간단한 사실을 2천 년 전에 간파했다. 그들은 인생이라는 투자 시장을 단 두 가지로 분류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투자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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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제할 수 있는 것 (기대수익률 100%의 투자처):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행동. 이것들은 내가 에너지를 투입하는 만큼 100%의 결과로 이어진다. 내가 책을 읽기로 ‘판단’하고, 실제로 책을 펴는 ‘행동’을 하면, ‘책을 읽는다’는 결과는 반드시 일어난다. 이곳이 바로 당신의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할 유일한 투자처다.


2. 통제할 수 없는 것 (기대수익률 0%의 투자처): 과거, 미래, 타인의 평가, 건강, 명예, 재산, 죽음. 이것들은 당신의 통제 밖에 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보장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를 바꾸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은 내 돈을 들여 남의 집 인테리어를 해주는 것과 같은 멍청한 짓이다.


스토아 철학자에게 평정심이란, 이 두 번째 영역에 대한 투자를 완벽하게 **‘손절’**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은 너그러워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화를 내는 행위가 아무런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했기 때문에 그 무의미한 감정 노동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고통을 잘 참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의 원인이 내 통제 밖에 있다면,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행위 자체가 더 큰 손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가장 냉철한 형태의 집중이다. 통제 불가능한 모든 변수를 내 인생의 포트폴리오에서 제거하고, 오직 통제 가능한 변수에만 100%의 자원을 재투자하는 것. 이 극단적인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평정심’이라는 고요한 상태다.


당신이 지금 괴로운 이유는 착해서도, 예민해서도 아니다. 그저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쓰레기 같은 자산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당신의 감정 계좌를 열어보라. 어디에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그만하면 됐다. 이제 그만 그 어리석은 투자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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