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을 맞으며
꼭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없는 일요일.
벌써 11월이니까, 2023년 여기저기 써서 보냈던 글들을 갈무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실천사설에 올린 글들을 보는데, 1월 첫글의 제목이
"2023년을 맞으며 해야 할 결심"이다.
도대체 무슨 결심?하고 내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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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맞는 학교 단상
학생수는 줄고 있고 학급당 학생수는 22명 수준인데 40명 넘게 있을 때보다
곱절 이상 힘들다는 건(개인적 경험상)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잡다단해졌다는 것이고,
요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인권에 대한 인식도, 법제도적 규제도 강화되었지만,
'문화'의 힘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자식 내 맘대로 하는 건 학대도 방임도 아닌데,
너희가 하는 건 다 학대고, 방임이다’라는 식의 분위기가 너무 무섭다.
이 동네 애들이 다 어렵고 힘든 형편이라 애들을 야단치지 못하고
좋은 말로 하면서 그냥 그냥 넘어갔다는 누군가의 연민 어린 말을 들으면서,
들어야 할 말을 못듣게 하는 것 역시 방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들어야 하는 말을 권위를 갖고 차분히 해 주면 되는 거다.
그게 점점 불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고,
이는 그 짐을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거 같아 안타깝다.
어느새 학교는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그냥 큰 문제만 생기지 않는 정도로 데리고 있다
올려 보내면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말해 봐야 듣지 못하고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심어주는데
누가 나서서 그런 쓴말들을 할까.(생기부 기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을 아동학대 방임으로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작년에 우리반 학부모에게 했던 말이다. 이것은 협박인가? 간절함인가?
교사로서 해야 할 말, 했어야 하는 말을 전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 되는 시대에
학교와 교사는 무엇인가?
나를 지켜준다고 착각했던 '안위'와 헤어질 결심과 함께
2023년은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앞으로 펼쳐질 모험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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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글의 제목들은
2월. 엉거주춤 학교 방역지침에 줄줄새는 행정력, 새학기 방역지침은 언제쯤 나오나?
3월. '아동학대 교사'라는 멍에 앞에서
4월.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교권침해를 경험한 후 어떤 과정을 거쳐 회복하였는가!
5월. '이태규 법안'을 둘러싼 논쟁의 맥락 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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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6월, 7월, 8월 원고를 쓰지 못했다.
내가 힘들었으니까,
정말 명퇴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쓸 주제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여 글을 당분간 쓰지 못하겠다고
편집담당자에게 밝히기도 했다.)
7월.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목도하며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당장 내일 교직을 떠나더라도....'
충격이 각성을 부른다.
이 각성이 언제까지,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
2023년은 한국 교육사에서도, 내 개인사에서도 중요한 이정표다.
관련 실천사설: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