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by 성열호

사람들의 뒷모습을 많이 봤다.

앞서가는 사람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 저 멀리서 점점 작아지는 등. 나는 늘 그걸 쫓아갔다.

20대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친구들이 취업 준비할 때 나는 아직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쪽 길로 가볼까, 아니다 저쪽이 나을 것 같은데.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합격 소식이 하나둘 들려왔다. 누구는 대기업 갔다, 누구는 공기업 붙었다, 누구는 대학원 갔다.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만 제자리였다. 아니, 제자리도 아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빙빙 돌고 있었다.

취업은 늦었다. 많이 늦었다. 동기들이 3년 차, 5년 차 될 때 나는 신입이었다. 회사에서 나이 물으면 얼버무렸다. 동기보다 후배가 편했다. 선배들한테는 왠지 주눅이 들었다.


항상 후발 주자였다.

출발선에 섰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앞에 있었다.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 그 거리를 좁히려고 뛰었다. 더 열심히, 더 빨리. 근데 앞에 있는 사람들도 뛰고 있었다. 거리가 잘 안 좁혀졌다.

그래도 계속 뒷모습을 봤다.


근데 신기한 게, 그게 딱히 싫지 않더라.

앞서가는 사람들 보면 주눅 들고 비참해진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좀 달랐다. 오히려 동기부여가 됐다. 저 사람 저렇게 하는구나. 나도 저렇게 해볼까. 저 정도까지는 못 해도 조금은 따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뒷모습이 이정표가 됐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앞서가는 사람들이 방향을 알려줬다. 물론 그 방향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근데 아무 방향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운이 좋았던 건 주변에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는 거다.

롤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 대단한 스펙이나 업적 때문이 아니다. 그냥 사는 모습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 일도 열심히 하는데 삶도 놓치지 않는 사람들. 후배한테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몇 년간 남는 사람들.

그런 뒷모습을 보면 생각했다.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저 정도면 괜찮은 거구나. 나도 좀 더 열심히 해볼까. 비교해서 주눅 드는 게 아니라, 비교해서 힘을 얻었다.


교육이나 워크샵 같은 데 가면 더 그렇다.

강사한테 배우는 것도 있지만, 사실 옆에 앉은 사람들한테 더 많이 배운다. 같이 교육받는 선배들, 동료들. 쉬는 시간에 나누는 대화에서 힌트를 얻는다. "저는 이렇게 해봤는데요." 그 한마디가 몇 시간 강의보다 나을 때가 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싶으면 나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처지는 게 불안해서가 아니다. 저 무리에 끼고 싶어서. 나도 저 흐름에 타고 싶어서.


여전히 후발 주자다.

그건 변하지 않았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여전히 멀리 보인다. 거리가 확 좁혀지진 않는다. 솔직히 좁혀질 것 같지도 않다.


근데 괜찮다. 따라잡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그냥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저 뒷모습들이 보이는 한 길을 잃진 않을 거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

내 뒤에도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일까. 별 볼 일 없어 보이려나. 그래도 가긴 가는구나, 싶으려나.


내가 선배들 뒷모습 보면서 힘 얻었던 것처럼, 누군가한테 조금이라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거창한 롤모델 말고. 그냥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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