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
어릴 때 강철의 연금술사를 재밌게 봤다.
등가교환.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화에선 약간 질량 보존의 법칙? 같기도 하고 심오해 보였는데. 현실에서는 좀 인정하기 싫은 법칙이더라.
이직하고 3년 차쯤 됐을 때였다.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런 역량이 중요하구나. 저쪽 분야로 가면 저런 길이 있구나.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나도 슬슬 방향을 잡아야겠다 싶었다. 전문성이라는 걸 키워보고 싶었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거다.
A도 재밌어 보였고, B도 끌렸다. 둘 다 하면 안 되나? 선배들한테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시간이 안될걸? 하나만 해." "둘 다 하다가 둘 다 망해." "욕심부리지 마."
나는 그때도 청개구리였다.
하나만 고르라는데 둘 다 하고 싶었다. 왜 안 돼?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남들보다 좀 더 시간을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둘 다 붙잡았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말을 반납했다. 평일 저녁도 반납했다. 사람 만나는 걸 줄였다. 모임 나가는 걸 줄였다. 쉬는 시간을 줄였다. 내 시간이라는 걸 약간 포기했다. 교통비, 교육비 등 비용도 많이 나갔다.
아등바등 버텼다. 꽤 오래 버텼다. 보람도 있었다. 둘 다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졌다. 봐라, 되잖아.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왜 그렇게 말했는지.
두 영역에서 워크숍이 열렸다. 같은 날이었다. 둘 다 가고 싶었는데 몸은 하나였다. 처음엔 "재수 없네, 하필 겹치네" 했다. 그랬는데 자꾸 겹쳤다.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중요한 기회일수록 겹쳤다.
그제야 이해했다. 선배들이 왜 그랬는지.
시간이 안 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잠을 줄이면 된다. 문제는 시간을 만들어도 쪼개지지 않는다는 거다. 같은 시간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다.
등가교환이었다.
A를 선택하면 B를 포기해야 한다. 그날 그 시간만큼은. 그리고 그런 선택이 쌓이면 결국 방향이 갈린다.
하루는 24시간이다.
당연한 말인데, 이걸 진짜로 체감한 건 그때였다. 24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빌 게이츠도 24시간, 나도 24시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일을 하면 삶이 줄어든다. 삶을 살면 일이 밀린다. A를 하면 B를 못 한다. B를 하면 A를 못 한다.
뭔가를 선택하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예외 없다.
다 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능력이 부족한 건지 용량이 작은 건지 모르겠는데, 난 동시에 여러 개를 잘 못 한다. 인정하는데 오래 걸렸다. 하나를 제대로 하려면 다른 걸 놓아야 한다.
결국 선택해야 했다.
A와 B 중에. 둘 다 100%는 안 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마음은 둘 다였지만 현실은 그렇게 안 되더라. 선배들 말이 맞았다. 욕심이었다.
뭘 포기할지 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다 중요해 보였다. 다 놓치기 싫었다. 근데 다 붙잡고 있으면 다 놓친다는 것도 알았다. 어중간하게 두 개 하느니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것도.
요즘은 시간을 쓸 때 이걸 먼저 생각한다.
이걸 하면 저걸 못 한다. 이 연수에 가면 저 모임은 포기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맡으면 주말이 사라진다.
예전엔 그냥 됐다. 일단 하고 봤다. 지금은 계산한다.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나? 내가 지불하는 대가만큼 돌아오는 게 있나?
계산적으로 변한 것 같아서 좀 씁쓸하긴 하다. 근데 안 그러면 남는 게 없다.
계산적이 다라 생각하니 아이들을 보면 가성비를 너무 따진다. 노력을 하고 노력에 맞는 보상이 아닌 더 큰 보상만을 원한다.
"이거 해서 뭐가 좋아요?" "이거 하면 뭐 돼요?"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득을 계산한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도 계산하면서 살게 됐으면서 아이들이 계산하는 건 못마땅하다니. 모순인 거 안다.
근데 좀 다르다. 나는 한참 부딪혀보고 나서 계산하게 된 거다. 아등바등해 보고, 둘 다 붙잡아보고, 안 된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나서. 그러고 나니까 어디에 시간을 쓸지 따지게 된 거다. 경험 끝에 나온 계산이다.
처음부터 계산만 하면 뭘 알겠나. 부딪혀봐야 안다. 해봐야 안다. 등가교환의 무게를 직접 느껴봐야 뭘 지불할지, 뭘 얼마큼 얻어야 하는지 판단이 선다.
반대로 이런 아이들도 있다.
손에 쥔 걸 못 놓는 아이들. 성과가 안 나온다. 방법이 안 맞는 것 같다. 근데 바꾸질 못한다. 지금까지 쏟은 시간이 아까워서.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져 있다.
등가교환은 양방향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새 걸 쥐려면 손에 든 걸 놓아야 한다. 근데 놓질 못한다. 그래서 새것도 못 잡고 헌것도 제대로 못 쥐고. 어정쩡하게 둘 다 흘린다.
지금 보니 나도 그랬다. A도 B도 놓기 싫어서 둘 다 붙잡고 있다가 둘 다 어중간해질 뻔했다. 놓는 게 두려웠다. 포기하는 것 같아서. 지는 것 같아서.
근데 놓아야 잡을 수 있다. 손은 두 개뿐이고, 쥘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등가교환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뭘 얻을지, 뭘 포기할지. 매 순간 선택한다. 그 선택들이 쌓여서 내 삶이 된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뭘 골라도 뭔가는 잃는다. 그냥 덜 후회할 것 같은 쪽을 고르는 거다. 그게 최선이다. 선배들은 그걸 알았던 거다. 나는 직접 부딪혀보고 나서야 알았다.
오늘도 24시간이 주어졌다.
뭘 얻고 뭘 포기할까. 여전히 욕심은 많다. 여전히 다 하고 싶다. 근데 이제는 안다. 안 된다는 거.
등가교환의 법칙. 피할 수 없으면 현명하게 지불하는 수밖에.
오늘은 뭘 지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