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 그동안 너무 많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나. 원체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혹시라도 나중에 살고 싶어지면 비어버릴 내 인생은 어쩌지, 싶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살고 싶은 사람처럼 살아보았다. 목소리 크기를 이전보다 조금 키웠다. 눈을 크게 뜨고 가을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가족들의 이런저런 애정 어린 요구에 화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저녁 메뉴로 밀어붙였다. 인스타 게시물을 올리고 친구들과 다른 때보다 많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최대한,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웬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언젠간 죽어야지 싶은데 그게 지금 당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변한 게 아니라 신체도 변한 것 같다. 기운 없고 축축 처지는, 마치 코끼리가 내 위에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이제 들지 않는다. 활동적이고 활발하던 예전 모습으로 잠깐 돌아간 것 같다. 가족들이 감지할 만큼 커다란 변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안다. 단지 즉각적인 자살 충동이 사라졌을 뿐인데 삶이 이렇게 살 만해 졌다. 이제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온다.
겪어 보니, 자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덜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자살을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자살을 더 진지하고 가볍지 않은 태도로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이를 넘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자아를 소환해 내야 한다. 자신을 속이고 꾸며서라도 '자살하고 싶지 않은 나'를 창조해내어 그를 연기해야 한다. 그로 하루 동안만 살아보고, 그 하루가 최고로 좋은 하루로 기억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가 다시 원래 자아로 돌아가지 않기를 원하게 해야 한다.
행동 강령까지 적어둔 이유는 역시 나를 위해서다. 내일이면 나는 자살하고 싶은 나, 언제든 창밖으로 뛰어내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나로 돌아가겠지. 그럴 때 이 글을 읽고, 하루만 더 자살하기 싫은 나를 연기해보자고. 어떻게 보면 자살 충동은 그만큼 힘이 센 것 같기도 하다. 온 힘을 다해, 자아를 바꾸려는 마음까지 먹어야 겨우 잠시나마 모습을 숨기기 떄문이다. 자살 충동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를 찾아온 손님 정도로 이해해야 충동이 내 자아에 스미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 뭐가 됐든 이 놈을 처치하는 것이, 그리고 이 다짐을 내일도 잊지 않고 해내는 것이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