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 한낮의 카페는 사람들로 붐빈다. 손님들은 여유롭고 직원들은 바쁘다. 카페 문을 열고 선 너는, 그 조화롭고 활기찬 분위기에 놀라 조심스레 문을 닫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복할까. 저 행복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까. 너는 남의 행복을 질투하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비참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아까 전 문을 열었을 때 모두가 너라는 불행 덩어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떠올리며 울고 싶어진다.
1-1.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너는 우는 법도 잊어버렸으니까. 눈물조차 소진되어 더 울 힘도 없으니까.
2.
살면서 자살시도를 몇 번이나 했을까. 너는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뛰어내리려 들거나 목을 조르는 것 외에도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거나, 혹은 어떤 방법으로든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자신을 조금씩 죽이는 것까지 자살시도라고 친다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래서 누군가 자살시도를 몇 번 했냐고 묻는 순간이 너는 두렵다. 너 자신도 모를뿐더러 적당히 지어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자살시도는 다섯 번, 이라고 답해야 하는 것일까. 공식적이라니, 왠지 언론인같다고 생각하며 너는 조용히 웃음짓다 다시 표정을 잃는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자살시도는? 너는 짐짓 고민에 빠진다. 비공식적인 자살시도라면 오늘도 했는데. 이런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상대는 원치 않을 것이다. 매일 자신을 조금씩 죽이는 사람과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답변을 조금 수정해야 하나, 일 년 전 쯤으로. 너는 이런 이상한 고민이나 하면서 시간을 버리는 너 자신이 탐탁치 않다. 어떤 생각을 하든 그 생각의 끝에는 자기혐오가 있고, 이는 곧 혐오스러운 일생을 끝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같은 것으로 이어진다. 아무래도 내일은 정말 끝내야겠어, 하고는 자신의 무능 때문에 내일을 살아가는 실수의 반복이다.
3.
저도 우울 시기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걸 우울 시기라고 부르는데.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빠져나와 있어요. 나를 뒤덮고 있던 자기혐오가 언젠가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 있어요.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어느 순간 싹 씻겨내려가.
4.
습관처럼 죽음을 생각하며, 네가 배운 점은 죽음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살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죽을 용기를 냈을까. 너는 누군가의 '죽을 용기로 살아야지'라는 비난을 떠올린다. 그 말은 틀렸다. 살 용기보다 죽을 용기가 백 배는 더 내기 어려우니까. 설령 죽을 용기가 있더라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감당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목울대에 걸린 죽음, 그 죽음을 삼키지 못해 너는 켁켁댄다. 삼키지도 못할 거면서 섣불리 입에 넣은 너 자신을 또 비난한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밖에 쓸 수 없는 스스로를 한탄한다.
5.
다 지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