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겨울, 퇴사했다

by 제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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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회 생활 경력은 1년, 2년 그리고 4년.

크고 작은 회사들을 거쳐 총 3개의 회사를 지나왔다. 운이 좋게 교수님의 소개로 첫 회사에 입사했다. 국내 1위 여행사의 자회사였는데 나름의 복지도 좋았고, 첫 회사치고는 선방한 편이라 생각했지만 야근 지옥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젊음의 패기로 1년을 아둥바둥 퇴직금을 위해 버텼고 그렇게 첫 회사를 나오게 됐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렇게 멈추어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역시 여행사였는데, 국민적 인지도는 없으나 나름 여행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곳이라 위안삼아 열심히 다녔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일다운 일, 거지같은 일 고루고루 경험해 보았다. 그리고 회사를 보는 눈이 생겨갈 때 쯤 내가 좋아했던, 내가 의지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회사를 떠나갔다. 이직한 사람도 있고, 회사가 X같다며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나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큰 이유 없이 무작정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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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회사에 입사하다.

두 번째 회사를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취업이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운이 좋게도(?) 업무 분장을 하다가 '홍보 파트'에 투입되어 갑작스럽게 새로운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길로 PR직무를 이어하자는 생각에 세 번째 회사를 만났다. PR 주니어였던 나를 나름의 시니어로 커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되었던 세 번째 회사.


여행업을 떠나 새로운 업계, 그것도 내가 꿈꿔왔던 엔터테인먼트 업계! 그렇게 소망했던 엔터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에겐 새로운 시작이자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알려준 곳이기도 했다. 회사 역시 내가 어릴적부터 지켜봐왔고 아주 좋아했던 곳이기도 했고, 회사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재밌었다. 외국계 회사라는 점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영어, 일본어 두 언어를 다 해야했다. 난 그래도 서면업무엔 자신있었지만 퇴화하는 스피킹 실력은 내 클립토나이트였다. 사람들도 좋았고, 직원들을 배려해주는 회사의 분위기, 꽤 자주 나가는 해외 출장, 남들이 부러워 하는 회사라는 점.. 여러가지가 참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워라밸"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내 개인 시간을 빼서 일할 수 없는데... (아니 못하는데, 내가 왜 퇴근 후에 일을 해야 해?)' 아무래도 엔터업계의 특징이 이 업계와 회사를 사랑해서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열정을 일반인인 내가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새벽에도 신경써야 하는 것이 생기고, 퇴근 후에도 메신저가 오고, 급한 이메일은 처리해 주어야 하며, 내가 쉬고 싶은 날 휴가를 낼 수 없었고, 여러가지 상황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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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강행하고 그 후...

그렇게 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회사를 4년만에 박차고 나왔다. 퇴사를 결심한 날부터 매일 집에서 울곤 했다. 서로들 자신의 일이 급하다며 나를 재촉하고, 나의 상황은 봐주지 않고 강요하는 그들이 너무 싫었고, 계속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회사를 나온지 언 5개월에 다다랐다. 5개월 동안 뭘했냐면, 한달은 정말 푹 쉬기도 했고, 또 4차산업 시대에 빅데이터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회사 2곳에 합격했지만 최종 처우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고, 정말 가고싶었던 공공기관 1곳에서는 예비1번이라는 믿고싶지 않은 결과를 받았다. 무언가 바쁜 5개월이었지만 내 손에 남은 것은 많지 않은 겉만 번지르르한 빈 깡통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말 가고 싶었던 공공기관 최종 결과를 확인한 후 웃프게도 내 일상은 다시 잡코리아와 Simply Hired를 반복하는 시간으로 돌아왔다. 느즈막히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다니고, 낮술이 땡기면 아무때나 술을 먹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최신작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상할 수 있는 일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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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봄은 왔다.

나의 계절은 고달프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같은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봄이 왔고 꽃은 피기 시작했다. 수 많은 봄을 만났지만 이번처럼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고 내 자신이 초라해진 봄은 처음이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다시 준비할지 시끄러운 고민들에 머릿 속이 복잡하지만 언젠가 오게 될 나의 계절을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내가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고 생각한 그 5개월 동안에도 분명히 땀은 흘렸고, 그 땀에 의해 체지방이 1g은 빠졌으리라. 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난 강력한 무언가를 얻었고, 먼훗날 이 경험과 시간에 감사함을 느끼거나 털털하게 웃음을 던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지금의 나처럼 흘러가는 이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을 휘감는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럼 자 이제, 네 번째 회사를 향해 항해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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