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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Nov 25. 2017

남성 과학자는 없다

사회에는 여성인 과학자가 더 필요하다

인문계열인 나에게 ‘과학자의 삶을 떠올려보라’고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과학자'의 이미지는 실험실 가운에, 안경을 쓴, 그리고 고독해 보이는 어떤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된 과학자는 단언컨대 열 번에 아홉 번은 남성이었다.


‘특정성이 어떤 직업에 적합하다’는 말을 요즈음 같은 시대에 한다면 정말 큰일 나겠지만, ‘과학자’의 직업 세계에서 여성 과학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편견과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여성 과학자들이 과학계에 진입하고 활약을 펼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느끼게 된지도 얼마가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 과학 국립 재단(National ScienceFoundation)에서 조사한 결과, 재단의 연구원들은 직업에서의 기회 다양성이 21세기에 접어듦에 따라 전에 비해 14%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성이 과학과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은 과학 기술 분야 종사자 전체의 1/4로, 여전히 성비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02). 또한, 과학자, 연구원에게 부여되는 종신재직권인 ‘테뉴어(tenure)’ 같은 경우에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혜율이 현저히 낮았다. 이는 여성 과학자가 고용되더라도 남성 과학자보다 종신적으로 재직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다. 즉, 여성이 과학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종신재직권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일인 것이다.


만화 <포닭 블루스> 안에서도 여성 과학자(또는 연구원)는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자’라는 직업 앞에 ‘남성’이라는 성을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아예 없다. 여성 과학자는 있는데, 남성 과학자는 없는 세상이다. 아래의 이미지와 같이, 네이버에‘과학자’ 라고만 치면 맨 처음으로 나오는 과학자의 이미지 중 대다수가 남성이다. 정말 간혹 가다가 유명한 퀴리 부인의 사진이나,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여성 과학자들의 경우가 특수한 케이스로 이미지에 등장하고는 한다.


네이버에 '과학자' 라고만 쳤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 총 42개의 이미지 중 2명만이 여성이다.


흔히 여성 과학자에 관한 주제에는 ‘왜 여성이 남성보다 과학,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은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는 관점이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며 힘을 길러온 강인한 여성들’에 대해서 분석하는 관점이 있다. 이 두 가지 관점 중 전자는 생물학적인 근거를 드는 경우가 많다. 그 근거는 대부분 ‘태생적으로’, ‘유전학적으로’ 따위의 근거를 들며 남성이 여성보다 과학, 기술분야에 종사하는데 유리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후자의 관점은 과학자 직업에서 나타나는 남성과 여성의 성비불균형에서 여성이 존재함에 찬사를 보내는 관점으로 전자와 반대로 왜 성비 불균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시 전자의 ‘왜 여성이 남성보다 과학, 기술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은지’에대해서 분석하는 관점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말한 관점에서 생물학적인 근거를 잠시 보류하고 그나마 기존과다른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총장 Lawrence은 2005년에<Summers>라는 과학기술 학술지에서 과학, 기술 분야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 그리고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 이유에 대해 저술했는데, 그는 여성이 자신의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남성에 비해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여성과 남성 중 누가 고강도의 업무를 더 원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여성이 남성보다 고강도의 업무에 약하며, 신체에 내재되어있는 힘이나 체력적으로 남성이 과학, 기술의 직업세계에 적합하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여성과 남성의 인지적 능력이 태생적으로 다르고 차이가 있다는 연구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성 정체성에 따라 내재된 여성 또는 남성의 능력, 또는 성별에 따른 사회화가 과학기술계에 적합한 인재와 연관되어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떤 사람이 더 과학자라는 직업에 적합한지는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가 극히 소수인 점, 남성 과학자가 절대 다수이며 성별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서 과학적 지식 추구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이다.


이런 근거를 통해 여성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기 때문에 연구실에서의 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앞선Lawrence의 의견에도 반박할 수 있다. 여성 과학자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싫어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면 단지 ‘여성은 가정에 있고 싶어한다’가 아닌,‘여성이 왜 가정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파고 들어야 한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남성은 왜 보편적으로 가정에서 육아나 가사를 담당하지 않는지'의 논의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여성학과 깊게 관련되어있는 부분이다.


남성의 능력과 여성의 능력을 고정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는 성과 직업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 남성인 과학자는 그저 ‘과학자’로, 여성인 과학자는 ‘여성’을 ‘과학자’앞에 꼭 붙여서 부르는 것은 이미 그러한 고정관념이 사회에 만연함을 드러낸다. 이는 여성에게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자의 성비 불균형은, 남성이 중심인 과학자가 수행하는 연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성에게 불평등이 대물림 된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연구와 여성 중심의 연구는 사회적 성이나 생물학적 성이 아닌 다른 연구이더라도 분명 내용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성 편향성은 과학 연구의 방향이 편향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잠재적인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 과학자가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Lawrence의 주장처럼 여성이 가정-육아나 가사노동 등-에 부담을 가져서 과학자로서의 역할과 업무 수행을 잘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노동을 주로 담당하는 문화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 역할 고정관념의 문제일 것이다. 남자가 육아와 가사노동 때문에 가정에 붙잡혀 있는 경우는 지금도 극히 드물지않은가. 과학자로서의 여성이 갖는 고충, 특히 그것이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가사에 대한 부담이나 양육 스트레스라면, 부담을 남성과 같이 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 부담 때문에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여성의 일을 여성의 역량으로 판단하는 것은 판단 기준이 잘못된 것이다. 여성 과학자의 역량은 그 여성 당사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의 역량이 사회적으로 편향된 질서와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폄하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남성 과학자뿐 만 아니라 여성 과학자가 연구한 연구 내용, 그리고 과학 기술을 알고 누릴 권리가 있다. 남성과 동등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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