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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막 일장 Jan 28. 2019

연극 <록앤롤>

시대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사상이 아닌 '자유'와 '사랑'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쓰러지지 않고 견디게 한 것은 사상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제대로 미칠 줄 아는 열정과 자유를 향한 갈망,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국립극단은 2018년 명동예술극장에서의 마지막 작품으로 연극 <록앤롤>을 무대에 올렸다. <록앤롤>은 영국 극작가 톰 스토파드의 작품으로, 2006년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이다. 톰 스토파드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와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20세기 대표 작가이다.


<록앤롤>은 1968년 프라하의 봄부터 1989년 벨벳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 1990년까지 격동의 체코 민주화 운동 역사를 다룬다. 프랑스 5월 혁명,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취임, 소련 해체 등 20세기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 또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록앤롤>을 '역사극'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록앤롤>에서 얘기하고자 한 것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체코 국민의 투쟁 과정이 아니라 '자유를 외치며 치열하게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록 음악과 맞물린다.


당신에게 더 중요한 자유는 무엇인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레코드판처럼 <록앤롤>은 190분 동안 등장인물들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며 무대를 하나의 토론장으로 만든다. 그 토론장에서 오가는 주장과 질문을 객석으로까지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토론 거리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쟁점은 바로 '개인으로서 존재할 자유'와 '정치적 자유' 중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였다. 주인공 얀과 얀의 친구 페르디난드는 1막에 걸쳐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피력하고 서로를 설득하려 한다.

똑같이 록 음악을 좋아해도 정치적 자유를 최우선으로 두며 후사크 정권에 저항하는 페르디난드와 달리 얀은 체코의 정치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록 음악을 할 수 있는 자유에만 골몰한다. 페르디난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덕적 과시라 비난하며 훗날 체코 민주화 운동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77 헌장에 서명하길 거부하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숨 쉬게 해주는 록 음악이었다. 외국으로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조국에서 록 음악을 하는 자유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얀은 단순한 심취를 넘어서 록 음악의 정신까지 따르고자 했다. 그렇기에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체제 자체에 편입하는 행위라 여겼고, 그 체제를 거부하고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애지중지했던 레코드판이 산산조각난 현장을 목격하며 '개인으로서 존재할 자유'가 '정치적 자유' 없이 유지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얀은 두 가지 개념의 자유는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공존해야 함을 깨닫고 '정치적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개인으로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로 한다. 한편 페르디난드는 강제로 머리가 깎이는 수모를 겪고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 플라스틱 오브 더 유니버스의 예술감독을 만나며 정치투쟁에 비협조적이라 여겼던 록 밴드가 실은 자신도 지키지 못했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충돌을 멈출 줄 몰랐던 '개인으로서 존재할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틀렸다고 말하길 멈추고 손을 잡기로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록은 계속 울려 퍼진다

68혁명, 이상주의적 공산주의와 현실주의적 공산주의의 대립, 후사크 정권의 인권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 벨벳혁명과 공산주의 몰락……. 세상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수많은 격돌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록은 끊임없이 흐르며 극 중 인물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에스메로 하여금 히피의 삶에 매료되게 했던 핑크 플로이드의 창립 멤버 시드 배럿의 음악이나 암울한 체코 사회 속에서도 얀의 집에서 울려 퍼졌던 수많은 록 밴드의 음악, 막스에게 자신의 과오를 사죄하는 얀이 흐느끼는 순간 흘러나왔던 건즈 앤 로지스의 <Don't Cry>, 그리고 극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롤링 스톤즈의 <You Got Me Rocking> 등은 막이 내릴 때까지 등장인물들과 동행했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이 록 음악을 좋아한다는 설정을 넘어서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던 얀과 에스메를 이어준 것은 레코드판과 록 음악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였다. 얀이 자신의 저항수단으로 록 음악을 선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록 음악은 멈출 줄 모르고 희노애락을 부르며 극 중 인물들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록은 과연 21세기에도 계속 흐를까?

68혁명과 히피 문화는 60~70년대를 관통했지만 지금은 혁명의 정신과 문화를 찾을 수 없다.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20세기, 자본주의와 팽팽하게 대립했던 공산주의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 그렇다면 록 음악도 언젠가 사라지는 음악이 될까? 작가 톰 스토파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에스메를 이어 딸 앨리스 또한 어머니의 우상인 시드 배럿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묘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록 음악을 좋아했던 순간을 잊지 않으며 롤링 스톤즈의 콘서트를 보며 즐겁게 뛰는 모든 인물을 그리면서 말이다. 작가는 이어서 한 가지 말을 덧붙인다. '자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추구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자유정신'을 담은 록 음악은 바래지 않는다고. 20세기에 타올랐던 록 음악은 꺼지지 않고 21세기를 향해 두드린다.


지금 한국에 와 닿지 못해 아쉬운

김재엽 연출은 긴 러닝타임의 압박 속에서 작품을 축약하기보다는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나아가 연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폐해를 들여다보고 비판하는 그답게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과 충돌을 보여주며 토론 거리를 객석으로 던지는데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개념을 붙잡기도 버거운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지적 만족감을 안기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체코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 하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와 닿지 못한 것은 의문으로 남는 것을 넘어 아쉬움을 산다.

명동예술극장에서의 전작 <오슬로>는 평화에 대한 인물들의 갈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기나긴 과정을 시대와 공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금 바로 우리의 문제'로 끌어들이며 관객의 공감을 사는 데 성공했다. <록앤롤> 또한 작품의 보편성과 배경에서 오는 특수성에서 분명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마음에 와 닿았을 것이라 믿는다. 소시민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록 음악을 하고 싶어 꿈틀거리는 얀을 이종무 배우는 과장 없이 차분하게 이끌었다. 그러한 연기로 자유를 갈망한 체코 국민을 대변하는 얀의 보편적인 특성을 살릴 수 있었으며, 점점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얀과 대립하며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던 막스 역의 강신일 배우는 주인공과 갈등하는 악역으로서만 연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깨닫게 되며 막스와 스티븐 등 다음 세대와 소통을 시도하는 '미워할 수 없는 꼰대'로 막스를 묘사했다. 유물론자 막스와 달리 의식과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인문학 교수 엘레나를 연기한 장지아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극대화하여 짧은 순간에도 몰입감을 높였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자유를 꿈꾸고 사랑한다. 그 모든 순간에 록 음악이 있었다. 19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낯선 개념들에 대한 부담감은 지워버리자. 마음속으로 자유를 외친다면, 록 스피릿에 젖을 준비가 되었다면 끝내 이 연극을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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