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이 두 개 뜨는 밤>

두 눈 뜨고 똑바로 보세요

by 일막 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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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꺼내도 되나 조심스러운데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옭아매는지, 저 밑바닥까지 추락시키고자 발악하는지 담쟁이덩굴이 서서히 잠식하듯이 보여줘서 숨이 턱턱 막혔다. 연극에서 가난은 돼지 열병처럼 어쩔 수 없는 재난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더 잔인하고 막막했던 건지 모른다.

극 중 인물들은 다들 자기 삶에 성실했다. 그런데 가난은 돌진하는 멧돼지처럼 순식간에 사람을 들이박고 또 부채에 부채를 더해간다. 사이 인물들은 구덩이에서 더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사실 ‘현실’이 아니고 ‘연극’이니까 소희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엎어진 허브 화분처럼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가난에 허덕인다는 이유 하나로 작은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연극에서 수없이 언급된 두 개의 달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절망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극 중에서 전형적인 악인은 없다. 모두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단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이 마음을 안 좋게 했다.


연극은 돼지 농장, 돼지 열병이란 공통분모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한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연결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산만하게 나열되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저렇게 촘촘하게 연결되었구나! 놀라게 한다. 그러면서 그들, 어쩌면 우리가 발버둥 치고 있는 데가 별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한다.


돼지들은 매장되지 않으려고 울부짖지만 결국 매장되었다. 돼지 열병에 걸려버린 돼지가 잘못한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 잡식성으로 살아온 돼지가 잘못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려고 애쓰는 돼지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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