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연극 <이런 밤, 들 가운데서>의 제목은 정태춘의 <이런 밤>과 <들 가운데서>라는 두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이런 밤>과 <들 가운데서> 모두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정서를 담고 있다. 설유진 작·연출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또한 씁쓸한 어투로 쓸쓸함과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 상실감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극은 거기서 멈추기보다 한때나마 간직했던 뜨거움을 다시 떠올리며 사랑에 관해서까지 이야기했다.
설유진 작·연출은 이번 공연에 ‘자유와 사랑이 도망간 세상에 그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염원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 점을 고려하자면 연극은 작·연출의 자문자답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작·연출이 품은 의문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 미투 운동,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자 개개인에게 정신적 후유증을 안기는 사건들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연도는 극 중 배우의 독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나만 홀로 남겨진 벌판이 아닌 모두가 존재하는 광장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무대는 다른 공연에서 주로 활용하는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니라 원형 무대다. 배우들이 앉는 의자는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그 외 공간에 원형으로 객석이 배치되었다. 배우는 자기 자리에 앉아 연기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무대로 나오거나 관객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가기도 했다.
조명은 극 중후반까지만 해도 시종일관 작은 무대와 배우, 배우 바로 옆에 앉은 관객만 비췄다. 극히 일부 사람만 드러났기에 조명이 내리쬔 곳이 독무대로 존재했다. 그런데 <Come Waltz With Me(나와 함께 춤을)>이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며 배우들이 다 같이 움직일 때 주황색 조명이 극장 내부를 비췄다. 그때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나머지 관객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순간 무대는 배우 한 명만 겨우 설 수 있는 좁은 공간만이 아니라 극장 전체로 확장되었다.
단 한 명의 개인만 존재하는 벌판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광장으로. 작·연출은 조명으로써 무대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 자체를 확장하기도 했다. 세상이라는 벌판에 당신만 남아 외롭게 독백하는 거 같지만 사실 당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당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당신이 눈을 돌려 그들을 찾으려고 하면 그들은 언제고 기꺼이 나타날 거라는 말을 작·연출이 무대로써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연극에 벌어지는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앵무새 ‘사랑’이와 뻐꾸기 ‘자유’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는데, ‘자유’와 ‘사랑’이 모두 죽었다. ‘사랑’이의 경우 불법 총기에 사살당했다. 2) 소란은 계간지를 읽다 어느 시에서 오자를 발견하여 편집팀에 문의 메일을 보낸다. 3) 어떤 할머니의 집에 한 여자가 방문하여 할머니의 안부를 계속 묻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동물원 마스코트였던 ‘사랑’이와 ‘자유’가 탈출하여 한 마리는 자연사하고 한 마리는 사살당한 것이다. ‘사랑’이와 ‘자유’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에 가까운 존재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세상 속에 있길 사람들이 바랐다. 그렇기에 ‘자유’에 이어 ‘사랑’이가 죽었을 때 미투 운동 이후로 세상이 크게 뒤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함을 목격한 피해자와 그들과 연대한 자들의 좌절감을 빌려 상실감을 말한 것이다. 즉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사랑도 발견할 수 없는 세상은 상실감과 그 상실감에서 비롯된 무력감으로 가득하다고 드러내고자 했다. 이때 무력감은 좌절감으로 대체하여 볼 수도 있다.
사랑을 발견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상실감은 소란이 계간지에 시린 시를 읽다가 ‘랑사에’라는 단어를 발견한 후 ‘원래는 ‘사랑에’라고 썼어야 했는데 작가의 실수로 오타가 난 건가?’라고 계속 의문을 품는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만약 소란이 그 부분에 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랑사에’라는 오타는 계속 남았을 테고, 그랬다면 시는 ‘사랑’이라는 영영 단어를 잃었을 것이다.
이렇게 연극은 다양한 장면을 통해 사랑을 잃었거나 찾을 수 없음을 깨달은 후 오는 상실감을 다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실감을 다루는 데서만 머물지 않는다. 극 중 한 인물이 ‘사랑이’라고 말하자 나머지 인물들이 ‘어디?’라고 손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묻는 장면을 통해 ‘이미 상실한 사랑을 그럼에도 찾으려 애쓰는 노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기울임에도 사랑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이때 연극은 또다시 찾아오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약에…’라고 상상하기로 한다. 만약에 ‘사랑’이가 총에 맞지 않는다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환상의 세계를 빌려 상상하고 이뤄내고자 한다. 그 세계에서 ‘사랑’이는 사살당하지 않았고 범인은 ‘사랑’이를 사살하려 했다고 경찰에 자수한다. 한편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시인이 편집팀으로부터 온 메일을 받고 오자가 난 시를 확인한다. 그리고 처음 오자를 발견한 소란에게 대답이라도 하는 듯 새로운 시를 낭송한다.
환상의 세계를 빌려서라도 ‘사랑’이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랑사에’라고 오자가 난 시를 바로 잡았으면 하는 마음은 결과적으로 응답받았고, 환상의 세계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랑’을 살리거나 사라지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간 속에 벌어진 일이지만 행동 동기에는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무대 위에 배우 한 명만 독백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그의 말에 경청하는 관객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짚어주는 연극이었다. 동시에 2014년, 2018년, 2022년…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상처를 안기는 시대 속에서 메말라가는 개인을 조명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잃어버린, 잊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되찾으며 회복하자고 말하고 바라는 연극이다. 그런 식으로 설유진 작·연출은 연극을 빌려 관객으로 온 개개인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