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하지만 더부룩하지 않은 나물처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어떻게 가족극으로 번안했는가? 라는 의문을 품고 공연을 봤는데, 질문 자체를 잘못 던졌다. 가족극에 어떻게 <리어왕>을 비롯한 셰익스피어 연극을 입혔는지 질문해야 했다.
문병재 작·연출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 특히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관객 앞에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 사이 사이에 뻔뻔하면서도 능글맞게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오는 대사와 장면을 차용한다. 그렇게 차용되는 대사와 장면은 무대 소품처럼 등장인물과 연극 자체의 메시지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존재한다.
<가족극 : 농사왕>은 <리어왕>처럼 극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반대 지점에 있다. 별다른 양념을 치지 않은 나물처럼 심심하다. 사실 <가족극 : 농사왕>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구체적으로 문복식, 허미자 씨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얘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기에 심심하게 느껴질지라도 편안하여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다.
<가족극 : 농사왕>에서 가족극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는 아마 1) 가족이 주요 등장인물이라서, 2) 가족 이야기가 연극의 주요 소재라서, 3) 가족과 함께 만들어서 일 것이다. 문병재 작·연출은 그중에서도 ‘가족과 함께 만들었다’를 강조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렇기에 연극의 소재로서 가족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무대에 세운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무대는 가족 구성원이 서 있는 순간 비로소 자기만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은 개인적이다. 반면에 극장은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극장이라 어쩔 수 없이 이질감이 들었다. 만일 이 연극이 또다시 상연된다면 기존 극장보다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그나마 덜 뚜렷한 공간에서 상연되는 게 나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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