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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막 일장 Nov 23. 2023

연극 <호호탕탕 옥루몽>

더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한계선을 긋고 멈춘

연출은 고전소설 『옥루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결국 원작이 가진 한계를 깨지 못했다. 형식적으로는 적극적 재해석을 시도했지만, 메시지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려는 듯하다 돌고 돌아 결국 보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인생이란 그저 한바탕 놀다가 훌훌 떠나면 되는 것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잘 살라고 말하기 위해 장대한 이야기를 끌어다 쓴 것인가.

무대는 오직 여배우들을 위해 존재하고, 또 그들은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인물들을 연기한다. 그렇기에 연극은 얼핏 보면 그럴싸한 여성 서사극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 인물들은 결국 유교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자로서 존재한다.

극 마지막 부분에서 인물들은 친구처럼 돈독하게 한 지붕 아래에 지낸다. 이 모습이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대안 가족을 구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양창곡이라는 남성의 처임을 떠올린다면 ‘아내 된 자는 함부로 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규율을 충실히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재해석 속에서조차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사회를 타파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원작이 나왔던 당대가 여성에게 닫힌사회라 소설임에도 견고히 존재한 이데올로기를 깨부수지 못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닫힌사회가 여성 개인의 노력으로 부수기 어려움을 드러내며 결말을 다음과 같이 낸 건 원작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반박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 점을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고 여성 인물들이 완벽한 성취를 이룬 것처럼 속인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첫 장면을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이 보는 것은 『옥루몽』을 충실히 살린 연극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기에 연출은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겠다고 선언한 김에 결말까지 전복해도 되었다. 이를테면 여성 인물들이 각성하여 양창곡에게 굳이 얽매이지 않아도 됨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식으로. 그러나 연출은 내용적인 면에서는 전복을 굳이 시도하지 않았다. 돌고 돌아 원작의 보수적인 결말을 따르고 그것도 모자라 인물들이 능동적인 선택을 했다고 기만한다. 

개인적으로 연극을 보다가 의아하면서도 불편했던 것은 바로 벽성선에 관해 얘기할 때 굳이 순결의 상징인 앵혈을 언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앵혈이 번지지 않았음을 여러 빨간 소품들로써 강조했다는 것이다. 만일 순결하지 않다면 천대받아도 마땅하다고 역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인지 연출에게 묻고 싶었다. 현대적으로 원작을 각색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지금의 관점에서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생략해도 되었을 텐데 언급한 것도 모자라 강조한 점이 아쉬우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연극은 다섯 명의 주요 여성 인물에 관해 세세하게 말했지만, 양창곡까지는 재해석하지 못했다. 즉 원작의 화법을 그대로 따라 양창곡을 묘사한다.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이 무결한 존재로. 그렇기에 제아무리 여성 인물들의 활약상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 동기에 양창곡이 있는 거 같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그를 굳이 언급해야만 했다면 여성 인물들이 왜 다른 이도 아닌 양창곡을 반려자로 선택했는지 드러내야만 했다. 그랬다면 오히려 여성 인물의 주체적인 선택을 부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그것은 알기 어려웠다.

다섯 선인이 인간계로 내려와 자신의 사연을 설거지 장갑, 바가지 등 실내 소품을 통해 얘기한다는 콘셉트 자체를 끝까지 뻔뻔하게 밀고 간 점은 관객이 그 세계에 웃으며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재해석을 통해 제대로 전복할 듯 선언했지만, 돌고 돌아 순응했다. 연출의 역량이 부족하여 그렇게 이야기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할 수 있었을 텐데 발걸음을 여기서 멈추기로 했구나’라는 아쉬움이 자꾸 들기에 실망스럽다. 자신이 가공한 세계를 끝까지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것도 연출의 미덕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해내는 것 또한 연출의 미덕이다. 그런 점에서 <호호탕탕 옥루몽>은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스스로 한계선을 긋고 거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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