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출을 위한 글쓰기
93년생 지니(이지현의 애칭)는 자폐성장애가 있는 필자의 딸이다. 18개월 즈음 말이 늦어지고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기관과 병원에서 상담, 진단을 받기 시작하였다.
교사였던 나는 학급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치료 교육을 받고 빨리 회복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교육을 시작하였다. 모든 일을 다 그만두고 35개월 놀이치료부터 시작된 특수교육을 받으며, 1주일 4~5개의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지니와 치료 교육현장을 순회하였다.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돌진하는 지니를 보면서, 소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낮은 책상 위에 철이 지난 달력, 해가 바뀌면 버려지는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지니를 무릎에 앉히고, 연필을 잡은 지니의 작은 손을 포개어 잡고 선긋기 놀이를 시작하였다. 다시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동그라미 안에 눈, 코, 입, 귀, 얼굴, 목, 팔, 다리, 목거리, 귀거리, 옷을 입히고, 색칠하며 놀이가 확장되어 갔다. 4살이었던 어느날 지니가 사람의 모양을 그려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조금 더 발전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나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미리 말하자면, 이 그림이 자료가 되어, 박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었다.
5세 되던 5월 29일(만3.6세) 서 있던 나를 가만히 안고 쳐다보며 ‘엄마’라고 불러주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들어보는 의미 있는 한마디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묻고 답하기의 짧은 대화가 시작된 것은 만6.6세에 이르러서였다. 지니는 6세에 정신지체 3급으로 장애등록을 하였으며, 14세 재검사에서 발달장애 3급, 16세 재검사에서 자폐성장애 3급으로 최종판정을 받았다.
특수학급이 없는 초 중학교에서 완전통합으로 수학하였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지역사회에 있는 A예술고등학교 선정 배치 신청하였으나 입학거부되어 P공업고등학교 특수학급에 배치되었다. 지니는 특수학급 소속이었으나 디지털디자인과에서 완전통합수업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탐색을 위하여 직업실습 및 직업체험프로그램에 부분적으로 참여하였다. 디지털디자인과를 공부하였으므로 수시지원으로 H대학교 디지털디자인과(현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H대학교는 국내 유일 장애통합대학으로 교육과정통합을 실시하고 있다. 지니는 매일 대중교통인 전철급행과 버스로 편도 1시간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교를 통학하였다.
지니의 성장과정을 보면,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기 4~5년을 앞서서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성인이 된 지니의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며 교수님께 상담을 하였으나, 장애인으로서 대학생활을 경험하는 것 그 이상을 바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2018년 11월 20일 장애대학생 진로 취업지원 권역별 거점대학 선정 발표). 지니는 학령기 동안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며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었으나 학과의 친구들과 학교에서 바라보는 지니는 보호 속에서 살아온 장애가 있는 학생일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자폐성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제한이 있으므로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정의 내린다. 스펙트럼으로 표현될 만큼 광범위함에도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로 자폐성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문서화 된 일반적인 이력서로 지니의 역량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나는 지니의 재능과 성과, 사회적응력 향상을 위한 체험, 경험 등 장애를 가진 개인으로 어떻게 노력하며 살아왔는지 지니의 삶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 사진자료와 메모로 만들어진 [생애포트폴리오, 나를 소개합니다]이다.
마침 나는 학령기 이후 성인이 되는 지니의 앞날을 고민하며 발달장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의 장애인평생교육 복지 전공의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중이었다. 나는 지니의 진로탐색을 위해 만들었던 지니의 성장, 교육, 체험의 기록인 ‘생애포트폴리오'를 주제로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아스퍼거 여성의 삶에 관한 종단적 사례연구, 2016).
지니의 엄마가 되고 지니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나의 세상은 완전하게 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하여 아들, 딸을 낳고 가정을 꾸리는, 지극히 평범한 나의 삶이었으나, 느닷없이 인생의 복병처럼 뛰어든 ‘지니의 장애’를 접하게 되었다. 이제껏 스치며 지나가던 누군가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나의 일상으로, 그저 막연하던 관념들이 고스란히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당혹감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안고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이 남아있을, 내가 살아내야 할 세상에서 ‘지니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러니 장애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를 알아야 했다.
늦은 언어발달로 1년 유예를 하여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니가 느리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것을 보며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장애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니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 나는 주 2회 야간수업을 하는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특수교사가 되어 특수교육현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현재는 특수교육대학원에서 교사양성을 하지 않는다.) 특수교육의 장애인평생교육 복지 전공의 박사학위를 받고 학기를 마감하며 학교를 떠났다.
현재 우리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이제껏 눌려있었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장애인복지도 마찬가지이다. 발달장애인 서비스 현장도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을 쏟아내며 함께 가야 할 자녀(당사자, 이후 자녀), 부모(가족), 교사(종사자, 이후 교사)의 관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소통,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녀를 사이에 두고 부모와 교사는 어떻게 소통하며 관계를 증진시킬 것인가?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장애인복지 제도의 대부분은 토양과 문화가 상이한 외국에서 들여왔다. 그러니 현장에서 발생 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 다시 외국의 사례를 탐색하는 2인자의 삶 지속하고 있다. 나에게 생긴 문제는 내 토양 안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반교사 10년, 지니와 특수교육서비스 이용자로 10년, 특수교사로 11년, 그리고 연구자로서 생애포트폴리오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소셜벤처 안정의 대표가 되어 바라보는 특수교육, 장애인복지 현장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 현장의 출발점은 발달장애가 있는 당사자와 장애를 함께 겪고 있는 가족이다. 그러니 문제의 출발점에서부터 탐색해 보자.
우리의 특수교육, 장애인복지는 자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치료, 교육을 위해 그다지 변함없는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부모가 무력해지는 것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또한,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달픈 삶은 드러나 있지 않으며, 치료 교육현장도 당사자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와 교사가 당사자의 성장, 교육, 체험의 기록을 만들고, 공유하며 함께 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녀를 잘 이해시키고 싶은 부모의 절절한 마음도, 자녀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은 발달장애인 부모의 소원도, 빅데이터, AI가 인간을 대신하며, 세계 최강 IT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걸맞는 적절한 콘텐츠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홈페이지를 만들고(www.seadam.or.kr) ‘지니의 스토리텔링(2018)’을 출판하였으며, 특수교육,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생애포트폴리오의 이해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부모와 종사자들을 만나며, 손바닥 위 스마트폰에서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생애포트폴리오 시스템을 구축하는 세아담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