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PART 1. 살아있음. 8장 자각 -'나'라는 주어의 전환

by 라이프퀘스트 한


8장 자각 -'나'라는 주어의 전환


자각(自覺)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각은

단순히 “나를 의식한다”는 자의식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자각은

살아 있는 자신을 의식적으로 아는 것

즉 살아있음이 스스로를 아는 순간을 뜻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과

그 생명력을 다시 일깨워 느끼는 단순한 인식,

바로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각,

곧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 자각은

불교의 ‘깨달음(覺)’,

명상 전통의 ‘알아차림’,

도가의 ‘도’,

현대 영성에서 말하는 ‘의식의 각성’과

본질적으로 같은 자리입니다.


다만, 특별한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이 원초적인 사실을

지금 이 순간 습관적으로 놓치지 않고

의식적으로 아는 가장 단순한 체험이 바로 자각입니다.


깊은 자각의 순간을 겪었다 하더라도,

‘경험을 했다는 기억’은 이미 지나간 생각일 뿐입니다.

살아있음은 그 경험보다 앞서 있고,

그 경험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 기억을 붙잡는 순간,

우리는 다시 ‘특별한 나’라는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자각은 늘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굳이 의식할 이유도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각은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이

직접적인 느낌으로 확인되는 체험입니다.


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배가 고팠다가 배부르기도 하고,

아팠다가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를 알고 있는 어떤 바탕,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의 느낌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살아 있다”는 그 느낌 자체는

언제나 같은 결로 흐르고 있습니다.


생각과 판단, 해석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몸 전체로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느껴보십시오.


그때 문득 있는 그대로 살아 있는 생명력이

조용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살아있음’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중얼거림에 빠져 있다가도,

몸과 세상(공간)을 동시에 느끼는 자리로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그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각은

생각으로 벗어나려 애쓰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공간 전체로 느끼는

살아 있는 느낌, 생명력입니다.


자각은 생각이 붙잡는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나’의 존재와 살아있음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히 보기 위해 풍선 인형을 떠올려 봅시다.


길가에서 흔히 보는 바람을 불어 넣는 풍선 인형을 떠올려 보십시오.

겉으로 보면 그것은 천으로 만든 인형일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인형을 춤추게 하는 것은

겉의 천이 아니라 안에서 흐르는 공기입니다.


이 비유에서

천으로 된 인형의 몸이 우리의 몸이고,

그 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라면,

실제로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안에서 흐르는 공기,

곧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 – 살아있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몸(인형)과 생각·감정(움직임)을 ‘나’라고 여기지만,

사실 우리를 진짜로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

바로 살아있음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주어가 바뀝니다.

“몸과 생각(인형의 움직임)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살아있음’(공기의 흐름)이 바로 나다.”

이 근원적인 주어의 전환,

바로 이것이 자각입니다.


이제 자각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금 잠시 멈추어,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느껴보십시오.

가슴의 미세한 움직임,

배가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감각,

발바닥이 닿아 있는 느낌을

부드럽게 느껴보십시오.


자각 이전에는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몸을 느낀다”

그러나 자각이 드러나는 순간,

관점은 이렇게 바뀝니다.

“살아있음이 몸을 느끼고 있다”

같은 감각이지만,

주어가 바뀝니다.


이 작은 전환 주어가 “나”에서 “살아있음”으로 옮겨가는 전환

바로 이것이 자각의 핵심입니다.


‘방향과 시점 — 살아있음과 자각의 순환’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에는

서로 맞물린 두 개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근원에서 세상으로 향하는 흐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입니다.

이 두 흐름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의 들숨과 날숨처럼 서로를 완성합니다.


근원에서 세상으로 ― 살아있음의 방향

살아있음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보이는 자리로 흐릅니다.

보이지 않는 근원,

즉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이

몸이라는 통로를 지나 세상 속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순간은

살아있음이 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움직임입니다.


이 방향에서는 주체는 항상 살아있음입니다.


살아있음은 태양과 같아서,

빛을 세상으로 비추며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살아있음의 관점입니다.


세상에서 근원으로 ― 자각의 방향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그 빛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게 됩니다.

빛을 보던 눈이 다시 태양을 향해 돌아가는 순간—

그 되돌아봄이 바로 자각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늘 밖으로 향해 있습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 주의를 쏟으며

몸과 생각을 ‘나’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 있는 걸까?”

이 물음이 의식의 방향을 바꿉니다.

바깥으로 향하던 주의가 안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보던 시선이 몸으로 돌아와

그 안에 흐르는 힘 —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시점은 ‘나’라는 개인에서

‘살아있음’이라는 근원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습니다.

“몸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몸을 통해 느끼고 있구나.”


이 되돌아봄, 즉 세상에서 근원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바로 자각의 방향입니다.

빛이 세상을 비추다가

다시 “나는 태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과 같습니다.


몸 ― 두 방향이 만나는 다리

몸은 이 두 흐름의 만남의 자리입니다.

근원의 살아있음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통로이자,

세상이 근원을 되돌아보는 창입니다.


몸은 단지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세상에서 머무는 집이며,

동시에 세상이 근원을 바라보는 창입니다.

살아있음이 몸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이 몸을 통해 근원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각을 경험합니다.


결국, 살아있음과 자각은 하나의 호흡입니다.

살아있음은 근원에서 세상으로 내쉬는 숨,

자각은 세상에서 근원으로 들이마시는 숨입니다.

한쪽만으로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동시 인식'으로 하나가 될 때

‘나’와 ‘세계’는 분리 없는 영원한 자유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살아있음이 됩니다.


이제 ‘나’라는 말을

다시 바라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본다.”

“내가 생각한다.”

“내가 느낀다.”

“내가 아프다.”


그러나 자각이 깊어질수록

이 문장들은 조금씩 이렇게 바뀝니다.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살아있음이다.”

“생각을 비추는 것은 살아있음이다.”

“감정을 느끼되

그 감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살아있음이다.”

“몸은 아프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여전히 온전한 살아있음이다.”


나는 눈이 아닙니다.

나는 생각이 아닙니다.

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나는 몸 그 자체도 아닙니다.


나는 눈을 통해 보고,

몸을 통해 존재하고,

생각과 감정을 비추어 알고 있는

살아있는 자각입니다.


자각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이

스스로를 비추는 빛입니다.


살아있음은

모든 경험을 비추지만

어떤 경험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기쁨이 와도, 슬픔이 와도,

분노가 와도, 평온이 와도 —

살아있음은 모든 것을 바라보되,

스스로는 변함없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나’는 상황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들을 비추는 살아있음의 자각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음으로 산다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고, 쉴 때마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고요히 자각하며 사는 것.

그것이 살아있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몸의 느낌을 의식해서 느끼고,

동시에 그 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각을 느껴보십시오.


그 자리가 바로 살아있음이며,

당신의 가장 깊은 진실입니다.


이제 보다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살아있음’을 하나의 비유로 풀어 보려 합니다.

살아있음, 몸, 자각은

마치 전류와 전구, 그리고 빛처럼

서로를 통해 드러납니다.


다음 장에서

이 비유를 통해

살아있음의 구조를

조금 더 선명하게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