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7 살아있음의 무한한 차원. 2장 신의 창조적 놀이
2장 신의 창조적 놀이
‘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간과는 동떨어진 초월적 존재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이렇게 말하고 있진 않나요?
"이건 우연이 아니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그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속에 신은 이미 현존하고 있습니다.
신은 믿음이나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각 안에서 체험되는 실재입니다.
고요한 아침 햇살 속에서,
눈물이 맺히는 깊은 감동 속에서,
아이의 웃음 속에서,
절망을 꿰뚫고 나오는 생의 의연함에서
그때마다 신은 말없이 깨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1)
이 말씀은 신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나의 내면에서 발견하라는 초대입니다.
우주 전체가 신의 몸이라면,
살아있음은 신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은 당신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을 통해 보고,
당신을 통해 느끼고,
당신을 통해 체험하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은 자유롭습니다.
목적도 조건도 구속도 없습니다.
흙 속의 벌레와 들판의 풀,
숲 속의 나무와 하늘을 나는 새,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와 별빛 아래의 바다까지—
그 모든 움직임 속에서
신은 끊임없이 춤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아이의 웃음 속에서도,
우리의 눈빛 속에서도
그리고 당신의 숨결과 심장 박동 속에서도
신의 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춤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춤의 한 장면이며,
지금 이 순간,
당신 역시 그 춤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춤을 어떻게 함께 하고 있나요?
삶을 너무 진지하게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삶을 시험처럼 여기며,
무엇을 성취해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하며,
어딘가 도달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 있나요?
어린아이들은 목적 없이도 뛰놀고, 결과 없이도 웃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냅니다.
그 순수함과 자유가 바로 신의 본래 모습이며,
살아있음의 본질입니다.
살아있음은 놀이입니다.
그리고 신의 표현 또한 놀이입니다.
그것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으며,
‘이래야 한다’는 기준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자유롭게 펼치며 흐르는 춤의 느낌입니다.
과학이 우주를 ‘질서’와 ‘법칙’으로 본다면,
영성은 그 질서 안에서 펼쳐지는
창조적 놀이로 봅니다.
우주는 정적인 기계가 아니라, 춤추는 생명체입니다.
별이 폭발하고, 은하가 회전하며,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모든 순간이
신의 창조적 놀이이며, 살아있음의 예술입니다.
인도 철학에서는 우주의 창조를 ‘릴라(Lila)’—신의 놀이라고 부릅니다.
세계는 고통의 감옥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보는 거대한 놀이의 장입니다.
진리는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고도 가볍고, 강하고도 유연합니다.
춤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지 않습니다.
노래는 결과를 위해 울리지 않습니다.
예술은 완성된 작품보다 창조하는 그 순간,
표현하는 그 과정 자체가 놀이입니다.
살아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몸과 공간을 동시에 느끼고 체험하는
살아 있는 축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불안, 아픔, 혼란, 설렘, 불안, 기쁨, 평화-
그 모든 것은 살아있음이 펼쳐낸 존재의 파동이며,
이미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삶을조금 더 가볍게 안아볼 수 있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놀이 중입니다.
고통만이 아니라 더 깊은 체험을 위한 모험입니다.
지금, 당신은 이 삶을 놀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있음은 신이며, 신은 지금도 춤추며 노래합니다.
당신의 숨, 걸음, 말없는 침묵까지도 –
신의 춤이며, 살아있는 예술입니다.
당신은 신의 가장 장대하고 비범한 작품입니다.
동시에, 작품으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신이 지금 이 순간,
당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살아 있는 형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