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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Nov 19. 2024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순간 : 컴백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때 닥터둠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선택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내이자 팀 다우니의 제작자인 수잔 다우니와 함께 마블의 총괄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와 마주 앉았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2019년 어벤자스 : 엔드게임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떠났지만 여전히 마블의 창업공신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없었다면 2008년 아이언맨으로 MCU가 킥스타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여전히 아이언맨의 감독 존 파브로와 어벤저스 : 인피티니 워와 어벤저스 : 엔드게임의 감독 루소 형제와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케빈 파이기는 미팅에서 “만일 돌아온다면”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마블은 왓이프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만일 돌아온다면이라는 주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케빈 파이기 모두 예민한 주제였다. 캐릭터와 스토리와 조건과 명분이 모두 필요한 고차방정식이었다. 물론 다급한 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니라 마블이었다.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아이언맨이 전사하면서 MCU를 떠난 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에서 루이스 스트라우스를 연기하고 있었다. 루이스 스트라우스는 천재 핵과학자 오펜하이머를 질투하고 탄핵한 모차르트의 살리에르 같은 인물이었다. 아이언맨 마스크를 내려놓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자신에게 지금 루이스 스트라우스 역할이 너무나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케빈 파이기와 MCU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아이언맨은 이미 과거 지사였다.


만일 돌아온다면이라는 주제는 사실 마블 레벨의 논의 사항이 아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MCU 출연료는 이미 상한선을 넘은지 오래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와 어벤저스 : 엔드 게임 두 편의 출연료로 8000만 달러를 받았다. 한화로 1100억 원이 넘었다. 결국 공은 마블의 모회사인 디즈니로 넘어갔다. 결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케빈 파이기의 미팅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디즈니의 최고경영자 밥 아이거의 미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인 논의 주제는 디즈니 테마파크였다. 디즈니는 테마파크 디즈니 월드에서 어벤저스 관련 어트랙션을 늘릴 계획이었다. 코로나 판데믹이 끝난 직후인 2023년 디즈니의 테마파크 부분은 보복 소비 덕분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디즈니월드 방문 비용이 높아지고 있었다. 2017년에는 성인 2명이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를 1박 2일로 방문하는 비용이 하루 78만 원 정도였다. 2024년엔 120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가 버렸다. 소비자들은 디즈니월드 대신 차라리 해외 여행을 선택하고 있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테마파크에 새로운 볼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그건 MCU가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의 볼거리가 테마파크의 탈거리로 이어지는 것이 디즈니의 벨류체인이기 때문이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의 엔진이 테마파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CEO였다. 디즈니 매출의 절반 이상이 테마파크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밥 아이거의 대화는 디즈니 테마파크의 새로운 어트렉션들로 시작했다. 두 사람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집에서 마주앉았다. 어벤저스 전편을 뛰어넘는 출연료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영화 흥행만 고려했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디즈니의 테마파크 수익까지 고려하면 안 될 것도 없었다. 새로운 캐릭터들과 새로운 스토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루소 형제의 감독 복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건 케빈 파이기도 밥 아이거도 원하던 바였다. 어느 순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정말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하면 퇴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기대를 계속 뛰어넘을 수 있을까?”를 자문하다 아이언맨으로 복귀하는 것보다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 마블 세계관에서 타노스를 압도하는 빌런으로 평가 받는 캐릭터 닥터 둠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MCU 복귀는 마블이 아니라 디즈니 차원에서 설계된 큰 그림의 일부다. 2019년 엔드게임 이후 인기가 예전만 못한 마블의 부활도 중요한 미션이다. 그렇지만 마블만을 위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카드를 꺼내들었다면 그건 오히려 외통수일 수 있다. 하다하다 흘러간 옛 노래를 리바이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블은 예전 같지 않지만 디즈니는 다르다. 지난 8월 7일 공개된 디즈니의 3분기 실적은 매우 양호했다. 일단 골칫거리였던 스트리밍 부문이 2분기 연속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디즈니 플러스와 훌루와 ESPN 플러스의 영업이익은 4700만 달러였다. 극장과 스트리밍을 더한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영업이익은 12억 달러에 달했다. 디즈니 플러스만 따로 놓고 봐도 2분기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유료 가입자수는 1억1760만 명을 돌파했다. 2020년 은퇴했던 밥 아이거가 다시 CEO로 복귀한 건 디즈니 플러스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년 만에 디즈니 플러스가 돈 먹는 하마에서 수익성 있는 미래 사업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물론 한국 시장에서 디즈니 플러스의 처지는 좀 다르다. 한국 시장에서 디즈니 플러스의 월간활성사용자수는 2023년 9월 434만 명에서 2024년 7월 251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직접적인 이유는 무빙 이외에 흥행 드라마가 없었던 탓이다. 240억 원을 투자한 지배종과 400억 원을 투자한 삼식이 삼촌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으로 유명한 이수연 작가의 지배종은 용두사미의 전형이었다. 무빙의 한효주가 타이틀롤을 맡았지만 유전자 조작 장기라는 거창한 소재를 제대로 주워담지 못했다. 삼식이 삼촌은 심지어 송강호의 첫 OTT 드라마 출연작이었는데도 망했다. 삼식이 삼촌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돌풍과 비교됐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모두 한국 콘텐츠를 기회로 삼았지만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고전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환경과 경쟁이다. 한국에서도 OTT 서비스는 코로나 시기에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난 뒤가 문제였다. 관객들은 극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 이상 방구석 1열에서 OTT를 보지도 않았다. 제3의 장소인 프로야구나 뮤지컬이나 콘서트로 몰렸다. 실제로 2024 시즌에 한국 프로야구는 1000만 관객을 겨냥하고 있다. 뮤지컬과 콘서트도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관객은 극장객석에도 TV앞에도 없게 된 것이다. OTT에서 보면 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고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는 OTT에서 공개됐을 때는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상태였다. 결국 1등 넷플릭스만 빼고 디즈니 플러스 같은 차선책들은 코드 커팅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경쟁이 더해졌다. 넷플릭스가 만들어낸 드라마 제작비 상승 경쟁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티빙과 쿠팡 플레이 같은 토종 OTT가 선택한 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스포츠였다. 티빙은 2024년 3월 한국프로야구 온라인 독점 중계권을 가져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티빙의 월활성이용자수는 2024년 7월 765만 명을 기록헀다. 가을 야구에 가까워지고 프로야구 순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MAU도 증가하는 추세다. 티빙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한국프로농구의 온라인 중계권도 확보했다. 2024년 10월부터 티빙 KBL 중계가 시작된다. 티빙이 한국 스포츠에 올인했다면 쿠팡플레이는 유럽 축구와 미식 축구에 올인했다. 여기에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까지 확보해서 스포츠팬을 확보했다. 한국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부진한 건 스포츠라는 지배종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미국에서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실적 회복에 성공한 것도 스포츠 덕분이라는 것이다. 디즈니의 ESPN 플러스는 스트리밍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효자 상품이다. NBA 결승전은 11년 동안 온라인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WNBA도 인기를 끌면서 ESPN 플러스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밥 아이거는 ABC 사장 시절부터 스포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경영자다. CEO로 복귀하자마자 ESPN 플러스를 키우면서 디즈니 스트리밍 부분 실적을 견인하게 만들었다. 미국 시장에선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쓰는 전략을 한국 시장에선 티빙이 벤치마크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디즈니 플러스도 언제든 한국 스포츠 시장을 겨냥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넷플릭스도 모르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2024년 8월 21일 주당 711달러를 찍으면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원래 구독 모델이었다. 2023년 출시한 광고 모델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연말엔 오징어 게임 시즌2도 대기 중이다. 그런데 숨은 히든 카드는 크리스마스에 맞춘 NFL 중계 광고다. OTT 경쟁의 전선이 스포츠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프로야구나 한국프로농구의 온라인 중계권료가 올라가리라는 건 명약관화다. 


밥 아이거는 장기인 스포츠를 통해 디즈니 스트리밍 디즈니의 실적을 개선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은 최근 수년 동안 부진했던 마블을 비롯한 콘텐츠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텐트폴 작품이다. 관객들의 기대를 끌어모으면서 관련 에피소드들의 흥행을 견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어벤저스 시리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귀가 깜짝 발표된 건 지난 7월 29일 샌디에이고 코믹콘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닥터 둠의 마스크를 쓰고 숨어 있다가 갑자기 벗으면서 깜짝 등장했다.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샌디에이고 코믹콘이 떠나갈 정도였다. 텐트폴 작품과 그 작품을 떠받칠만한 프렌차이즈 스타의 힘이다. 


그런데 디즈니가 발표한 텐트폴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어벤저스만이 아니었다. 2025년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타바 속편이 개봉한다. 부제는 파이어 앤 애쉬다. 부제부터가 어벤저스 : 둠스데이 못지 않은 무게감이다. 2026년엔 픽사의 토이스토리5가 개봉한다. 픽사를 대표하는 텐트폴 프렌차이즈인 토이스토리의 5편이 개봉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토이스토리는 토이스토리의 아버지인 존 레서티가 없이 제작되는 작품이다. 루카스 필름에선 새로운 스타워즈 트릴로지가 준비 중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몸값은 상상 초월이다. 개런티만이 아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디즈니에 개인 제트기에 전담 보디가드도 요구했다. 사실 아이언맨이 아니라 닥터 둠으로 MCU에 복귀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과거처럼 마블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10편의 마블 영화에서 아이언맨을 연기했다. 그런데 아이언맨이 아닌 다른 마스크를 쓰고 마블 팬들 앞에 다시 서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10년 넘게 아이언맨 시리즈를 이끌었던 동료 배우 기네스 펠트로조차 MCU 복귀 소식이 담긴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이해가 안 돼요, 이제 악당이에요?”라고 물었을 정도였다. 


마블은 이미 멀티버스라는 컨셉트를 스토리에 녹였다. 또 다른 평행 세계에선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아니라 닥터 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선 토니 스타크의 다양한 흑화 버전을 볼 수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은 “DNA의 일부로서 너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아이언맨과 닥터 둠이 어떤 식으로든 DNA가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2024년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HBO 드라마 심퍼사이저에서 1인 5역을 맡으면서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조연급 빌런 캐릭터에서 자신의 연기 커리어를 찾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올해로 60세다. 처음 아이언맨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의 나이가 44세였다. 마블의 주인공 중 주인공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제 닥터 둠으로 마블의 조연 중 조연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디즈니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해 관계가 일치했다. 그게 1년 전이었다. 그리고 다른 마스크를 쓴 채 다시 같은 미션이 시작됐다.




온라인 인물 정보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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