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는 그때 스티브 잡스에게 중국을 선물했다.
중국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 팀 쿡의 애플이 처한 현주소다. 팀 쿡의 애플은 중국으로 흥했다. 스티브 잡스는 1998년 애플로 복귀하면서 맨 먼저 팀 쿡을 스카우트했다. 팀 쿡은 컴팩의 COO였고 IBM의 북미 총괄 책임자였다. 업계에선 알아주는 자타공인 공급망 전문가였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는 부품이나 물류 같은 공급망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혁신 제품을 만드는데에만 집중했다.
중년의 스티브 잡스는 노련한 경영자가 돼 있었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도 품질과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공급망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 열쇠가 팀 쿡이었다. 팀 쿡이 스티브 잡스한테 제시한 열쇠는 바로 중국이었다. 디자인 바이 애플과 매뉴팩쳐 바이 폭스콘의 결합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1년 애플의 CEO가 된 팀 쿡은 이미 중국통이었다. 팀 쿡은 애플한테 중국이 더 이상 공급망만이 아니라는걸 간파하고 있었다. 중국은 공급망이자 수요처였다. 팀 쿡은 중국 시장에 집중했고 애플의 실적인 기하급수적으로 개선됐다. 팀 쿡은 미국 앨리바마에서 태어났다. 애플 CEO 팀 쿡은 중국에서 자라났다. 중국 시장은 팀 쿡의 홈그라운드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애플이 중국 시장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난 2월 중국 아이폰 출하량은 240만대 였다. 전년 동기 대비 33%나 감소했다. 춘절이라는 장기 연휴가 있어서 중국 소비자들의 휴대폰 구매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탓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아니었다. 아이폰 출하량은 2024년 1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39%나 감소했다.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의 인기가 시들해진 건 사건이 아니라 추세였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첫 6주 동안 아이폰 판매량 감소폭은 24%였다.
중국은 팀 쿡 시대 애플의 성장 동력이었다. 전임자 스티브 잡스는 아시아 시장에선 중국보단 일본 시장에 치중했다. 스티브 잡스는 일본 교토를 사랑했던 일본팬이었다. 반면 팀 쿡은 중국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이폰의 최대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애플의 시가 총액은 2018년 8월 2일 1조 달러를 돌파했다.
2020년 8월 19일에는 2조 달러를 돌파했다. 2010년대는 분명 애플 그리고 팀 쿡의 시대였다. 스티브 잡스의 시대처럼 신제품을 쏟아낸 것도 아니었다. 대신 중국인들의 아이폰 사랑이 있었다. 중국이야말로 팀 쿡의 아이폰이었던 셈이다.
중국에서 애플의 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아이폰15 출시 이후부터였다. 2023년 10월 22일 중국 시장에서 처음 공개된 아이폰15의 초반 판매는 아이폰14보다 5%나 적었다. 이미 이 때부터 아이폰15이 아이폰14의 판매량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원인은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 열풍과 중국의 경기 둔화 탓이었다. 아이폰15은 아이폰14처럼 비싸게 출시됐다. 팀 쿡은 아이폰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최대 이윤을 뽑아내왔다. 아이폰14까지는 비싸도 사고 비싸서 사는 프리미엄 전략이 통했다.
아이폰15이 출시됐을 때 중국 소비자들은 이미 대안을 찾고 있었다. 애플이 중국 소비자들을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호구로 삼고 있다는 반감이 강해졌다. 여기에 중국의 전반적인 애국주의 열풍이 결합되자 아이폰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이때 대안이 등장했다. 화웨이와 샤오미 같은 중국 본토 안드로이드폰들이었다.
화웨이는 결국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애플한테서 빼앗았다. 샤오미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애플한테 1등이라는 위상은 매우 중요하다. 비싼 가격을 설명하는 마케팅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1등이 아닌 애플은 거꾸로 사치재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2024년 1월과 2월의 아이폰 출하량 성적표는 1등을 빼앗긴 애플의 위기를 보여준다.
팀 쿡은 자타공인 중국통이다. 스티브 잡스의 COO로서 중국을 드나든 세월만 20년이 넘는다. CEO가 된 뒤에도 가장 많이 찾은 국가 중 하나가 중국이다. 그런데 팀 쿡이 이번처럼 중국 당국과 중국인들 앞에서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애정 공세를 했던 경우는 드물었다. 팀 쿡은 2024년 3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 동안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했다. 중국발전포럼은 중국 공산당 고위급 당국자들과 글로벌 최고경영자들이 만나는 자리다. 결국 중국 시장을 원하는 글로벌 기업 CEO들이 중국 고위 당국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지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다.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년동안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굳센 지도 아래 우리는 외부의 압력을 버텼다. 경제 회복과 호전 태세는 지속적으로 공고화하면서 증강되고 있으며 중국 경제의 장기적 호전이라는 펀더멘털에는 변함이 없다.” 기조 연설부터가 중국 중심 주의를 강하게 보여주는 자리라는 걸 보여줬다.
그런데 여기에서 팀 쿡은 이렇게 화답했다. “우리는 중국 현지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비전 프로를 올해 안에 중국 시장에 출시할 것이다.” 팀 쿡은 이번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한 CEO 중 가장 거물급이었다. 애플 이외에도 셀, 토털에너지, 스타벅스, 로레알, 블룸버그의 CEO들이 참석했다. 이번 중국발전포럼의 얼굴 격인 팀 쿡은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한다.”
팀 쿡은 중국이 애플의 시장일 뿐만 아니라 공급망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애플을 쓰는 것이 중국 산업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화웨이나 샤오미처럼 애플 소비도 중국 애국 소비라는 얘기였다. 팀 쿡은 BYD의 왕촨푸 회장과 만났다. 애플은 BYD와 2008년부터 협력해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애플워치의 배터리 부품을 공급한다.
BYD는 전기차로 더 유명하지만 시작은 배터리였다. 팀 쿡은 BYD와 배터리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애플이 공을 들이고 있는 XR 기기인 비전 프로용 부품 역시 중국 업체들로부터 공급받기로 했다. 에버원프리시전과 렌즈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인 중국 공급 업체들이다. 팀 쿡은 2가지 해법으로 2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와 경기 부진을 노골적인 친중국 행보와 가격 인하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이미 2024년 1분기에 전년 동기 19%에서 15.7%까지 줄어들었다. 아이폰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 애플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애플 제품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어간다. 아이폰이 팔려나가야 고객을 애플 생태계에 록인시킬 수 있다.
아이폰 유저는 앱스토어 이외에는 다른 애플리케이션 장터를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 워치 역시 애플워치 이외에는 쓸 수가 없다. 에어팟 같은 액세서리는 말할 것도 없다. 맥과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확장 구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이폰은 애플 생태계의 태양인 것이다. 그리고 아이폰에 록인된 중국 소비자들이야말로 애플 생태계의 에너지원이었다. 중국 소비자는 아이폰에 록인됐고 애플은 중국에 록인됐던 셈이다.
반면 애플의 본토인 미국에선 바로 록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팀 쿡과 애플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중국만이 아니다. 미국 법무부가 애플을 지난 3월 21일 반독점 혐의로 제소했기 때문이다. 메릭 갈랜드 법무부 장관은 “애플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불법적인 배타적 행위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메릭 갤런드 법무부 장관은 16개 주 법무부 장관들과 함께 애플을 반독점 혐의로 제소했다. 애플이 반독점 혐의로 기소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 번째다. 앞선 2번은 애플한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미국 법무부가 애플의 독점 사례로 제시한 건 5가지였다. 앱스토어라는 슈퍼앱을 통해 다른 경쟁자를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 클라우드 게임 앱을 차단해서 아이폰에서만 게임이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비애플 유저가 보낸 메시지는 녹색으로 표시되게 만들어서 차별했다. 애플워치를 의도적으로 아이폰 이외에는 작동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애플페이로 디지털 지갑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 다른 NFC 장치는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각각 앱스토어, 게임, 메시징, 워치, 페이 시장에서 독점 행위를 했다는 주장이다.
각각의 사항마다 논란 거리는 있다. 녹색으로 표시되는 메시지는 이미 애플 안에서도 개선안이 마련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애플워치는 OS의 문제라 애플도 개선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독점 소송은 애플한테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 법무부가 수년 동안 칼을 칼고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애플은 미국 회사지만 미국 정부는 미국 소비자들과 미국 시장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순이익은 2023년 기준 970억 달러로 이미 국가레발 수준의 기업이라고 설명헀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또 다른 국가와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정작 팀 쿡 CEO는 이 시기에 중국경제포럼에서 “중국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애플의 숨은 위기는 혁신이 부재한 팀 쿡 시대다. 팀 쿡은 애플을 제국으로 키워냈다. 대신 팀 쿡의 치세에서 애플은 시장을 선도하는 신제품을 제시하지 못했다. 전기차 프로젝트였던 프로젝트 타이탄은 좌초됐다. 이 과정에서 애플이 만들면 다르다는 신화가 깨졌다.
오픈AI가 주도한 생성AI 시대는 애플한테 큰 타격을 줬다. 모바일 시대에서 모빌리티 시대로 다시 AI 시대로 기술 강산이 세 번이 바뀌었는데도 애플은 여전히 모바일 시대에 이룬 혁신을 재탕삼탕하고 있었다. 결국 애플이 모빌리티를 하면 또는 애플이 AI를 하면 다를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는 낮아졌다.
오히려 애플은 혁신의 부재를 생태계 독점으로 감췄다. 애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골몰했다. 애플은 모바일 생태계의 창조자로서 10년 이상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미국 법무부의 독점 제소는 애플한테 허락된 시장 창조자의 프리미엄이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이만하면 충분했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은 진작에 움직이고 있다. 중국 시장의 변화는 애플의 보루였던 중국 소비자들조차 아이폰 독점 체계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시장 모두 애플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포럼에서 팀 쿡은 2024년 말까지 AI 아이폰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은 특정 시장이 무르익은 다음 완성형 제품을 선보여서 고수익을 얻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모빌리티에서도 XR에서도 애플의 신제품 출시가 늦어질 때마다 애플이 늦지만 크게 먹는 고수익 전략으로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정작 모빌리티에서도 XR에서도 애플은 한발 늦었을 뿐이었다. 크게 먹지는 못했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이번에도 느렸고 그래서 늦었다.
지금 애플은 중국과 미국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유럽 연합 역시 애플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이전의 위기들과는 다르다. 중국이라는 홈그라운드와 미국이라는 본토에서 시장과 정부가 애플을 공격하고 있다. 중국과 독점이라는 이제까지의 성공 방정식들이 이제부턴 애플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 독점과 생태계 독점이 끝난 지금, 팀 쿡한테 필요한 건 새로운 아이폰 모먼트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