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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un 12. 2022

오늘 나는 나의 삶을 산다

Is this a spiritual awakening?

지금은 토요일 밤 12시 40분.

특별하게 뭘 하는게 아니라면 깨어있는 시간이 아니다.

Because I'm a such a goody-two-shoes, I try to go to bed early and then wake up early because that's what good people do.

Today's journal is going to be mix of Korean & English.

I don't know why, but sometimes it just feels more natural to write some thoughts in English.


I just watched a movie in Netflix which starred Ryan Reynolds, Samuel L. Jackson and Salma Hayek. (Just googled their spelling) Salma rocked!!! She nailed it! I love her from now.  The movie's title was Hitman's wife's bodyguard (2021)


The role Ryan Reynolds played... reminded me a lot like myself.

경호원협회에서 제명된 것을 엄청나게 집착한다.

피 한방울 안섞인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을 절대 존중해주지 않는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고 계속해서 노력했다. 마지막에 그는 그 아버지라 부르던 사람을 죽이게 된다.


물론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trust me. It's more complicated than that.

날 크게 비난 한적은 없으시다. 최근 한 5년간 두세번정도 있었는데 마일드한 비난이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키웠나보다' 하는 비난이 마일드한 비난일까. 지금 내가 이 말을 쓰면서 가슴이 찌릿한것을보면 마일드는 아니었던 것같다. 그냥 내가 나를 보호하려고 정의한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크게 비난받은 적은 없다. 어쩌면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가 더 맞을 것 같다.

난 그 관심을 받으려고 평생을 엄청나게 노력했던 것 같다. 이게 또 아이러니한게 아버지는 지금도 나에게 더 안락한 삶을 주려고 밤낮으로 고민하고 계신다.

난 평생 안락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복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눈에 내 삶은 많이 부족해 보이고 안타까워 보이는 것 같다.


내 남편이 1년에 몇억씩 버는 전문직을 가졌거나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모를 가졌다면 덜 걱정하실까?

그건 또 아닐듯하다. 남편과 결혼하라고 한 사람도 아버지이다. '사람은 거의 다 비슷비슷해진다' 라는 멋진 말씀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더 모순적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딸에게 해주고싶은 어떤 수준의 외적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자신이 해주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못한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아버지 자신의 삶의 불만족에서 오는 강박이 아닐까?


지금보다 더 안락한 삶은 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건 아버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이 부족하다고 한 적도 없고 뭐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한적도 없다. 그런데 낼모레 이른살이신 아버지는 밤낮으로 고생해서 사업을 불리는 것이 다 딸들과 자신의 손주들을 위해서라고 하신다. 이를 인정받고 싶으신것 같다. 만나거나 전화통화할때도 사업과 돈 이야기 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자신의 사업을 내가 주도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것, 사업기회를 만들지도 않는 나에게 실망과 비난을 많이 하셨다. 다행인건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내려놓으신것 같다.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다는 증거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매번 부족한 것 같다. 돈을 쥐을 수 있는 기회를 줘도 못갖는, 내가 하는 일은 취미같은. 그런것은 나이들어서 해도 충분한데 (he literally said this to me),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만성적인 I'm not good enough의 반 이상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버지의 큰딸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선 무관심하셨다. 내가 뭘 원하고 무슨 삶을 원하는지 물으셨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마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못들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딸로써 그걸 어릴적부터 갈구했다. 나 자신 그대로 칭찬받고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가 일부러 나를 상처주려고 무관심하셨던 것은 아니다. He just doesn't have that capacity to emphasize with other people, even with his own daughter. So I don't blame him. But it just hurts me even at this age.


이렇게 말한김에 하나 더 털어놔야겠다.

내가 내 이름을 걸고 한 사업으로 1000만원을 벌었을때, 내가 저녁을 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정말 자랑스럽게 이야기한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런말씀을 하셨다.


"1000만원이 돈이냐."


생각해보니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내가 자꾸 그걸 감추려고 not a big deal 하면서 나를 보호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보니 정말 많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아빠에겐 큰 돈이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큰 돈이야" 라고 눈시울이 빨개져서 말했다.  

그제서야 조금 상황 파악이 되셨는지 급 칭찬과 인정을 나름 하시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딸은 그 말을 들어버렸다.


하나를 얘기하니 계속 이야기가 나온다.

컬럼비아 대학원을 나왔지만 보건정책, 경영이라 한국에 와서 집안에 의료재단이 있지 않는 한, 의사가 진료도하고 경영도하는 한국병원에서 한계가 있는 행정직원으로 살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감지했던 아버지는 내가 한 공부가 돈을 크게벌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빨리 외국에서 프랜차이즈를 가져와서 장사를 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아니면 영어학원을 크게 차리라고 하셨다. '아빠가 학원 세우는데 도와줄께. 나 그런거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 니 아빠 그런사람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는 또 착한딸 코스프레를 하면서 '응응' 이러고 다 받아드렸다.


응응 했지만 그것은 내 삶을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내가 한 공부에 애정이 있다거나 뭔가 의욕이 크게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래도 부모가 그렇게 이야기할것까진 없지 않나?


아버지와 엄마의 삶은 항상 불안불안했다. 싸우거나 말을 안했다. 둘이 사이좋은 시간은 그 중간에 잠시 휴전같이. 문제점에대한 해결없이 온 휴전같은 것이었다. 그 휴전기간엔 내가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외에는 항상 불안했다. 사실 휴전기간에도 불안했다. 곧 이 행복이 깨질꺼니까. 그래서 좋은 일이 생겨도 나는 안 좋아 질수 있는 일을 항상 함께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도 두분은 그렇게 사신다. 내가 결혼을 안했어도 나는 부모님과 절대 살지는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미쳐버렸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유학을 간것은 일종의 나를 지키려는 방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 선택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으며 아버지가 그런 나를 보내주셨던것은 아버지에게 평생 감사하고 살아야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거기서 내 남편을 만났으니까.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모르겠다. 굿걸 코스프레로 계속 살다가 아마 어느순간 곪아터져서 어떻게 됬을지 모르겠다.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남편과 그 남편을 키우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만나고 내가 처음으로 내가 괜찮다고 인정했던 것 같다. '애쓰지 않아도 돼 태진아' 라고 하셨던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깜짝놀랐던 기억이난다. 어른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얘기해준적이 없었다. 나는 이런말을 내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눈물콧물 범벅이다.


그래도 써야겠다. 안쓰면 안될것 같다.

지금이 기회같다.

내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할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39살의 나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줘야할 것 같다.




하나 정리해둘게 있는데,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렇다.

이렇게 말해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원망할정도로 내가 어리석지는 않다.

감정적으로 고통받은만큼 성장했다. 무엇때문에 원망스러운지도 잘 알고, 무엇이 부모복인지도 안다. 


아버지도 한낯 인간이다. 모순이 많은 그냥 인간일 뿐이다. 미국에서 일하고 있던 당시에도 아버지를 크게 원망할 일이 있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갔던 성당에서 하필이면 딱 그날 십자가의 길을 하는 것이었다. 벽면에 있는 14개의 그림을 하나씩 보면서 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성인이라 치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팔아넘겼는데 내 아버지라고 완벽할 수 없다고 나를 다독였다. 마음을 너무도 편하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아마도 하느님이 나를 다독여주신것 같다.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라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몇일전 날 나는 아버지의 액자를 집어던져 깨트렸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의 나에 대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이 굿걸 코스프레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서 벗어나 내 일을 하고, 내가족과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30년 넘게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일을 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더 잘해야한다고 I pushed myself further. 그래서 아버지에게 제대로 크게 하나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수 있도록 잘되고 유명해지고 싶었다. 

아직도 내 일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는 주변사람들에게도 내가 더 잘되면, 내 사업이 더 잘되면, 책이 나오면, 그때 쯤은 알리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when'을 걸고 있었다. 그 when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부족한 것이었다.


육아휴직후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부했다.

그러나 나 그대로 나만의 삶을 사는 것은 그렇게

one time revelation으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브레네 브라운 작가님 말씀대로 매번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다. 

평생동안. For every single choice we will make. 


나는 그 누구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부터 나는 매일 매일을 내가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돈을 더 잘벌고, 유명해지려고, 인정받으려고 잘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몸안에서 끓어나와서 하는 것이다.


It's not for them.

It's entirely for myself.

I'm doing this for myself. (이건 The Happiness Project에 나왔던 구절이다. 이 구절이 지금은 정말정말 많이 와닿는다.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한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 안해도 된다.

평생 아버지에게 never good enough 여도,

계속 지금처럼 가슴은 좀 아프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특히나 그것이 남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 영화에서 주인공  Michael Bryce 처럼

'future self'에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사무엘 잭슨이 말했던 '지금이 미래의 너야' 라고 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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