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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Dec 10. 2023

처음으로 혼자 와인을 마시다

처음, 혼자, 와인을, 마신 소감

    원래는 내 생일날에 맞춰 미리 사다 놓은 와인을 먹으려 했다. 그런데 생일 전날인 월요일부터 하루 일정을 빡세게 달렸더니 피곤하기도 해서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무리해서 먹지 말자고 결정. 그래서 일단 그 주 금요일로 미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금요일이 되었고 초저녁에 와인을 따려고 했지만 이거 저거 하느라 바빠서 결국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술상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끼리 살면 꿈도 못 꿀 일이니 그저 신이 났다.


     화려한 와인 냉장고 따윈 없으니 그나마 온도가 일정하고 직사광선이 차단되는 장롱 안에 신문지로 싸서 고이 모셔둔 와인병을 꺼내왔다. 지난번에 프랑스 와인, 미국 와인 이렇게 두 병을 샀는데 오늘은 느낌 있게(?) 프랑스 와인을 까기로 결정한다. 정갈하게 안주 준비를 시작하고 더불어 와인 따기를 시작한다.



와인 따기 전에 최대한 있어 보이게(?) 찍은 사진.


      사실 혼자 와인 먹으면서 걱정되었던 게 바로 이 '와인을 따는 것'이었다. 왜냐면 내가 악력이 약한 편이라 음료수도 잘 못 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토마토소스병을 못 따서 스파게티도 못 해먹을 뻔한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인은 나를 쉽게 허락해주질 않았다. 그동안 누가 따주는 와인만 먹어봤지 내가 직접 해보긴 또 처음이었다. 미리 사다 놓은 와인따개를 꺼내 칼 부분을 꺼내서 병뚜껑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낸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그리고 스크루를 잘 돌려서 코르크 마개에 박고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코르크를 꺼내야 한다.


     설명서에 써져 있는 그대로 했는데 안된다. 코르크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해. 힘의 문제도 있겠지만 지렛대 각도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인가 아님 역시 절대적인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코르크가 서서히, 아주 조금씩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오오오- 된다 돼. 그러다 뽕, 소리가 나면서 코르크 마개가 뽑혔는데...



 어라?
코르크가 반만 나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나오다가 중간에 부서진 거였다. 망했다. 잘못하면 밑에 박힌 코르크가 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남은 코르크 마개 부분에 스크루를 돌려 박고 살살 꺼낸다. 다행히 병 밖으로 남은 코르크 마개를 무사히 꺼냈다.


     오늘의 안주는 낮에 먹고 남은 냉동피자 2조각과 이게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생일날 만들어놓고 찔끔찔끔 나눠서 먹고 있는 빽순대 밀키트 되시겠다. 자, 안주 준비도 다 되었고 코르크 마개도 제거했으니 와인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드디어 와인병을 들고 우아하게 따르려는데 이것도 어렵다. 질질 흘린다.


     다이소에 와인따개를 사러 갔다가 그 옆에 와인병 입구에다 꽂고 따르는 깔때기 같은 게 있길래 이런 걸 왜 팔지? 했는데 바로 나 같은 애들이 있어서 있던 거였네. 지금까지는 항상 식당에서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손놀림으로 누가 따라주는 것만 먹어보고 남이 하는 거나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기만 했지, 내가 직접 따라본 기억이 없는 거 같다. 그냥 소주나 맥주 따르듯 그냥 따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번 흘리고 나서는 잔 각도를 약간 기울이고 병도 기울인 다음, 와인병 입구를 컵 안에 집어넣고 훅 빠르게 따른 다음에 재빠르게 병을 돌려서 꺼내니 그나마 안 흘렸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드디어 한 모금 마셔본다. 엥? 그냥 와인맛이네? 나는 회식 때 먹어보거나 아빠가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사온 비교적 저렴한 와인을 마셔본 게 다다. 그래서 그냥 평소에 내가 먹던 와인, 특별하지 않은 그냥 평범한 맛의 와인이구나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와인을 마시면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상영작을 보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온 와인이니까, 오늘 보려고 한 여러 영화 중에 마침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어서 그걸 보기로 했다. 프랑스어를 들으며 먹는 프랑스산 와인. 그런데 한 잔만 먹어도 취기가 오르네? 세 잔까지 겨우 마셨다. 한 병 땄는데 며칠에 걸쳐서 먹을 거 같다.


     아마 이 가격대의 저렴한 와인은 다 맛이 비슷한 걸까? 아님 종류별로 다르려나? 일단 따놓은 것부터 찬찬히 다 먹고 한 병 더 사다둔 미국산 와인을 마셔봐야겠다. 직원이 추천해 주면서 미국산 와인이 좀 더 대중적이라고 했던 거 같다. 이것도 마시다 보면 맥주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될까? 



아직은 잘 몰라서
익숙하지 않은 세계.
조금 더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와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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