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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09. 2021

2009년에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저는요-

BGM <2009년의 우리들>, 브로콜리 너마저

       2015년을 처음 시작하는 첫 월요일, 기말감사에 세무조정까지 있어서 바쁜 주간이었다. 그런데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보니 카톡이 왔다. 카톡을 보낸 사람은 첫 직장의 사수였던 차장님이었다. 첫 직장을 관두고 들어간 두 번째 회사와 맞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속으로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외쳤던 분이었다. 나의 첫 사수는 그렇게 만나기 어렵다는, 인간적으로 좋은 상사이면서 업무적으로도 좋은 상사였다. 그렇지만 상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 인생을 회사에 저당 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사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가 출산휴가에 들어가서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퇴사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퇴사할 때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퇴사하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하지 않아 무직인 상태에서 전 직장을 찾아가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이후에 취업은 했으나 이직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이직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자니 내 처지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껴서 사수에게 연락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주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어 얼른 메시지를 읽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곧 본인이 퇴사하신다는 소식을 알려주셨다. 늦어도 다음 주 빠르면 이번 주까지만 근무하실 예정이란다. 아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만두신다니!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일 년 중 제일 바빠서 휴가 내기 제일 어려운 1월 초였다. 게다가 금요일 오전에 이직 면접이 잡혀 있어서 몰래 휴가도 써야 했다. 깔끔하게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찾아갈까 했는데 이번 주까지만 근무하실 수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소식을 알았으면 좀 섭섭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연락을 주셨으니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미 휴가를 낸 금요일 오전에 면접과 전 회사 방문 두 가지를 다 해볼까 했는데 면접을 보고 나면 시간 상 바로 회사로 가야 했다. 결국 조금 무리해서 목요일 오후에 추가로 휴가를 냈다.


       퇴근길에 같이 회사를 다니던 동생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차장님 얘기를 꺼내면서 왜 갑자기 퇴사를 하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차장님만 그만두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인해 근속연수가 오래된 '여자' 차장급 이상들이 대거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서는 근속연수가 오래된 차장급 이상이 대여섯 명 있었는데 그나마 그중에 근속연수가 짧은 한 분 빼고 다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그만둔 지 꽉 채워 2년이 되었고 그즈음부터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부서장이 적당히 막았다는 둥의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재경부가 속한 경영지원본부장님도 새로운 분으로 바뀌고 회사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뭣도 모르는 동생은 자꾸 나보고 다시 재입사를 하라고 부추긴다. 올해는 원하는 곳으로 이직해서 당당하게 선물 사들고 가서 얼굴 보면서 좋은 분들을 만나 다행이었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 계획이 앞당겨져 버렸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던 2009년 그리고 내 발로 회사를 나오던 2012년엔 이 모든 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나를 포함해 같은 부서원들이 그 자리에서 계속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쯤 퇴사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뒤로도 누군가가 그만두고 그 자리를 채우러 사람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나부터가 겨우 3년 일하고 그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으니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같이 일했고, 밥을 먹었고,
부족한 나에게 일을 알려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던 사람들이
타의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전 회사에 가기 전날 문구점에 들러 부서원들에게 돌릴 카드를 샀다. 우리 부서는 대략 20명 내외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둔 2년 사이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 그만두기도 해서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은 15명 정도만 남아있었다. 15명분의 카드를 사서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사무실 앞에서 크리스피 크림 도넛 큰 박스를 두 개 사서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나를 데리러 내려와 주었다. 한 때는 출입증 카드만 찍으면 쉽게 들어가던 사무실이었는데 이제 외부인이라는 실감이 팍 났다. 우리 부서와는 다른 부서지만 일할 때 많이 협조를 구했던, 입구 쪽에 위치한 총무부에도 크리스피 크림 한 박스를 전달하고 복도를 걸어 안 쪽에 있는 우리 부서로 갔다. 예전에도 우리 부서는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는데 여전히 조용했다. 


      한 명씩 자리에 가서 인사를 하고 카드를 나눠 드렸다. 도넛도 사 왔으니 나눠 드시라고 했다. 사무실은 그대로 있었고 중간중간 모르는 얼굴도 눈에 띄었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르면 아예 내가 다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지겠지. 내 사수인 차장님과 또 이번에 같이 퇴사하시는 차장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자발적인 퇴사가 아닌 만큼 이것저것을 묻기엔 너무 조심스러워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내가 차장님들과 10살 이상 차이가 나니까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땐 어떻게 상사를 대해야 할지 그런 게 너무 어려웠었다. 대학교의 동아리 선배들을 대하는 느낌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나는 공채를 통해 입사한 것이 아니라 1명을 채용하는 자리에 입사한 것이어서 입사 동기도 없었고 부서에서 제일 어렸다. 그나마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이 있었지만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런 나를 거둬서 같이 점심 먹는데 데려가 주시고 항상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셔서 나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10년이 지나 내가 그분들의 그때 그 나이가 되었다. 내가 첫 사수만큼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업무적으로도 좋은 사람이면서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상사가 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날은 업무시간 중이었고 월 마감을 하는 중이라 다들 바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머무르지 못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아마 이제는 다시 방문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재입사를 하게 될까? 이미 내가 다닐 때 그만둔 두 명이 그대로 재입사를 했기에 재입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직이 잘 안 풀리니 재입사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재입사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도 있고 보아하니 회사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은 거 같다. 

     

     회사 동생 말로는 대리급까지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하려다 만 거라고 했다. 물론 대규모 기업이고 복리후생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시스템도 다 갖춰져 있지만 아무래도 규모가 크다 보니까 앞으로 몇 년간은 계속 프런트 라인의 업무들만 해야 하는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을까 싶다. 그걸 버티지 못해서 나온 거니까 신중해져야 한다. 


      쉽게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두자는 결론을 냈다. 재입사를 하게 되면 지금 고맙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퇴사할 때처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니 좋지 않았던 기억들은 많이 풍화되고 희석되었고 좋았던, 고마웠던 감정들만 남은 게 아닐까. 결국 나는 재입사를 하지 않았고, 그다음 날 면접을 본 곳에서는 탈락했지만 그 해에 다른 곳으로 이직해 지금까지 그곳에 다니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겠지만, 나의 첫 직장생활 3년의 시간을 같이 보내준 사람들에게, 좋은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안녕, 2009년의 우리들.






     글 제목의 '2009년의 우리들'은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제목을 빌려왔다. 나에게 2009년이란, 봄엔 괴로운 취준생 시절을 보냈고 여름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또 가을엔 사회로 진출한 해이기 때문에 인생의 큰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다 마침 노래 제목에 2009년이 들어가 있었기에 이 노래는 내게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는 2009년에 홍대의 작은 클럽에서 진행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만원 공연에도 갔고 2009년의 마지막 날에도 이 노래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여담이지만 이 노래를 불렀던 브로콜리 너마저도, 이 노래가 실린 1집 앨범을 2008년 말에 발매하고 서서히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메인 보컬인 계피가 탈퇴하면서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2008년에 이 노랠 부른 그들은 2009년에 그렇게 될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차갑던 겨울의 교실에 
말이 없던 우리
아무 말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던 마음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날은
어느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언젠가 넌 내게 말했지 
슬픈 이별이 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웃으며 말을 했었지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2009년의 우리들>, 브로콜리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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