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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29. 2021

인생이란 여정에 대해 생각하다

BGM  <여정>,  노 리플라이(No Reply)



이토록 새파란 하늘에 

이토록 그리움만 남아있는 듯해

멀어지는 것들과 붙들고 있던 것

저만치 흘러가는 강물에 떠밀려 간다


영원할 것 같던 그리운 마음들 

모두 수많은 바램들 모두 끝없이 흘러

아무리 애를 써봐도 벗어날 수 없던 너의 영혼 

설레는 밤 간절했던 꿈 모두 두고 간다


남아있는 미련과 목마른 감정들

봄날의 웅성임도 파도에 부서져 간다


영원할 것 같던 그리운 마음들 

모두 수많은 바램들 모두 끝없이 흘러

아무리 애를 써봐도 벗어날 수 없던 너의 영혼

별이 지던 잠들지 않는 밤 말 없는 외침들 

난 눈을 감는다


끝이 없는 어둠이 나의 앞에 나의 눈으론 가늠할 수 없는 

좁은 이 길 보이지 않는 사랑

무엇보다 깊은 내게 주어진 끝없는 질문에 그저 걷는다


사랑했던 모든 순간 아득한 물결 너머로 멀어져 간다

돌아보면 멈출까 봐 더 멀리 가야만 해 날 부르는 그곳으로


<여정>, 노 리플라이(No Reply)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그런데 개그우먼 고 박지선 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그날, 월 마감을 끝내고 지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히 헤아리지 못할 그녀의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나와의 접점은 곳곳에 있었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같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펭수를 그녀도 좋아한다던지. 그래서 그녀가 펭수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펭TV 구독자수 100만 명 돌파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MC로 출연하면 나는 그걸 보는 한 명의 구독자로, 팬미팅을 이끄는 MC와 구독자 정도의 공감대를 가진 사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세상을 등졌다는 기사를 봤을 땐 정말 아는 사람의 소식을 들은 듯이 가슴이 먹먹했다. 여태까지 다른 연예인들의 사망 소식도 많이 들어봤지만 그저 남 얘기라 여겼고 실제로도 그렇게 넘어갔지만 이번엔 달랐다. 자세한 내막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와 마지막 길을 함께 갔다고 해서 그것이 더 가슴 아팠다.


     목숨을 등지는 것은 소위 말하는 '나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잔인하게도 그것은 누군가에겐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항상 남들을 재미있게 해 주던 그녀가, 정작 본인의 아픔은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특히 그 길을 함께 했을 어머니는 또 어떠했을까.


     내가 그런 선택을 할까 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때 나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엄마다. 만약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퍼할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를 알았던 다른 사람들도 물론 조금 슬퍼하겠지만 그래도 잊고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거란 걸, 한평생 한이 될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 나의 존재로 하여금 오점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그 누군가가 특히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잘났고 다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상처 받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족한 거 아닐까?


     좋아하는 노래지만 내가 이 노래를 자주 듣는 것이 아닌데 꽤 무거운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순간 혹은 정말 힘든 순간에만 듣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노래에 감정이입을 너무나 잘하는 나는 우울하거나 다운된 노래를 많이 들으면 소화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전에 1주일 정도 늦은 여름휴가를 냈더니 꽤 긴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언제 끝나나 했던 휴가도 어느새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조금 끝내 놓고 맥주 한 캔을 마실 여유가 생겼다. 나는 이 여유 시간에 내가 뭘 할 것인지, 내 의지로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깔깔깔 웃으면서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맥주캔을 따서 한입 두입 마시다 노 리플라이 노래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러다 '여정'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 이 노래의 뮤비는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가수는 앨범을 사서 CD를 리핑한 후 MP3로 변환해 듣는다. 혹은 유튜브로 음악을 들어도 화면을 보지 않고 주로 노래만 듣기 때문에 뮤비를 제대로 볼 일이 없었다.


     나는 주로 출퇴근길이나 밖에서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니까 그럴 땐 아무리 노래가 슬퍼도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있는데 독립했으니까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맥주도 한 캔 마셔서 취기도 살짝 오른 상태로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조용히 읊조리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혼자 사는 것의 좋은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아무리 혼자 사는 집이라도 이곳은 아파트니까 크게 소리를 지를 순 없지만 적어도 들릴락 말락 노래를 살짝 따라 부를 수도, 울 수도 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새벽 2시에 잠 안 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을 듣거나 혹시 무슨 일 있느냐고, 괜찮냐는 질문을 받으며 이 분위기는 깨어질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저 조금 유치한 중국 로맨스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웃기고 재밌는 예능 영상을 보며 맥주를 마시며 긴 휴가의 끝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다. 이 노래를 찾아들었고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여정'이란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인생이란 여정에 대해서. 나는 지금 어딜 걷고 있는 것인가. 그러다 대책 없이 회사를 관두고 스페인의 유명한 성지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라면 분명 성지순례길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해서 친구들도 안+못 사귀고 끝까지 혼자 걸을 가능성이 높겠지. 남들처럼 무슨 백수여서 왔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현실과 괴리가 있네 아니면 애인이랑 헤어져서 힘들어서 왔네 하는 특별한 사연도 없다.


    지금의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 미성숙한 도피 주의자일 뿐이다. 비겁한 도망자일 뿐이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피하려고 하는 겁쟁이다. 그러니 단지 성지순례길을 '걷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될 게 없을 거라는 것도 안다.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성지순례길에서 있었던 일을 영상으로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어오거나 할 것도 아니라는 거 또한 안다. 그렇게 대책 없이 직장을 관두고 갔다 오면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지불해야 할 카드값과 새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에서 굽실대야만 하는 나를 봐야 하는 또 다른 나 밖에 없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가고 싶어졌다. 


     최근에 제주도에 있는 오름들을 한 번씩 다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년 1월 말부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여행을 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이젠 혼자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에 재미가 없고 흥미가 떨어져서 잘됐다 싶었다. 남들은 너 요즘 여행 못 가서 어떡하냐고 물어오지만, 가볍게 코로나 핑계를 대고 저만 힘든 것도 아닌걸요, 하며 웃어넘긴다. 하지만, 이상하게 성지순례길만큼은 혼자서라도 걸어보고 싶어졌다.


    성지순례길을 걷는다고 해서 하늘에서 어떤 답을 계시해 주는 건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 등산한 것처럼 다리만 죽도록 당기고 짐은 더럽게 무겁고, 날은 덥고, 땀은 비 오듯이 흐를 것이다. 그럴 거 다 아는데도, 그래도 가보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잘 도망칠 방법을, 나는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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