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감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체 언제 끝나나요?
연초 마감하며 쓴 어느 날의 이야기.
지금 회사에 입사해서 여태까지 8번의 회계감사를 받았다. 이번이 그중에 가장 현장에서 질문이 없었다. 물론 그동안 우리가 크게 문제가 없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저연차 회계사들이 배정돼서 뭘 잘 몰라서 파악 중이라 필드에 있을 때 안 물어보고 그 이후로 물어보고 자료요청을 하는 거 같다는 심증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심증이 아니라 확신이다.
이전에는 보통 필드(우리 회사)에 오자마자 나를 닦달해서 채권채무조회서를 바로 받아갔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편으로 보내던 것과 달리 이제는 이메일로 발송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주 느긋하다. 게다가 주소 등 확인해서 다 보내줬더니만 마지막에 확인도 안 하고 내부 계정처리 때문에 매출채권 계정을 나눠서 쓰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 거래처는 전혀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확인도 안 하고 그대로 보낸 거다. 이 저연차 회계사가.
물론 사람은 실수를 하니 '잘못했어요, 다시 보낼게요'라고 해도 되지만 업계 특성상 깐깐하고 갑질하는 고객이 많아서 채권채무조회서 자체를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왜 자꾸 하지도 않아도 될 일을 추가로 만드는 거냐고. 체크해야지, 물어봐야지. 회계사가 회사의 회계처리 아니 산업구조나 매출 구조를 이해해야지. 그런데 이해를 못 했으면 물어봐야 될 거 아냐. 그래야 우리도 알려주지.
회계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뽕이 차있는 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세무조정팀 회계사가 그러더라. 자기도 저연차 때는 질문하는 게 부끄러워서 잘 못 물어보고 나중에 선배들한테 혼났었는데 지금은 안 그런다고 했다. 인원이 자주 바뀌는 감사팀과 달리 세무팀은 한 번 맡으면 멤버가 오래가는 경우가 많고 담당도 별일 없으면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이 분이 저연차 때부터 우리 회사를 맡아서 해줘서 지금은 이분도 중간연차 정도 된 거라 그게 뭔 말인지 알겠는 거다.
회계사 시험에 붙었으니 당연히 나보다 많이 알겠지만 (물론 자격증 없이 많이 아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회사 실무는 잘 모르잖아? 그럼 물어봐야지. 어설프게 아는 상태에서 하는 게 제일 위험하다고. 여태까지 온 회계사들은 잔액을 몇 번씩 확인하고 왜 계정을 나눠서 처리하는지 물어보고 몇 번씩 확인해서 실수 한 적 없았는데 너무 짜증이 났다. 별 거 아닌 일이라지만 까다로운 거래처에서는 이런 걸로도 담당 영업사원한테 전화 걸어서 컴플레인을 하니 진짜 노답이다.
전화를 해서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고까지 설명했는데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가만 보니 똑똑하긴 한 거 같은데 뭐랄까 물어보는 것에 대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걸 대답하는 타입인 거 같다. 싸워서 뭐 하겠니. 참자.
감사인과 피감사인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이들의 손에 우리 회사의 존망까진 아니지만 생사가 달려있고 감사인은 감사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수고비를 받아가야 하니 가능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이미 문제없이 잘해왔다는 가정 하에. 아무래도 이 구조는 모순적이다.
이미 거래처 한 군데에서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팀원한테 연락이 와서 이대로 좌시할 수 없겠다 싶었다. 아까 전화했을 때 미안하다, 죄송하다란 말 한마디만 했어도 내가 화가 덜 났을 거다. 나한테 그저 구구절절 자기가 무슨 작업하다가 막판에 보니 계정이 나눠져 있네? 하면서 묻지도 않고 파일을 싹 바꾸고 보냈단다. 말이야 방귀야 그게. 그렇다는 건 최종 버전은 우리가 확인해 준 것도 아니라는 거잖아. 그래서 메일을 썼다. 이 일을 인차지 회계사한테 보고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니 그분도 메일에 같이 넣어서.
물론 미안하다고 하고 재발송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계정이 분리돼서 나간 금액은 우리 내부적으로 관리하는 금액이고 영업적인 것과도 관련 있는 거라 그게 뭔지 알려지면 곤란하고 영업적으로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랬더니 그제야 죄송하다고 메일이 온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그게 가져올 파장이 얼마 정도인지 내가 전화 상으로 납득시키지 못했던 모양이다.
전화는 메일처럼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려고 했나 보지. 모르면 그냥 물어봐. 알려줄 테니까. 나도 쪽팔려도 물어본다고. 나도 쪽팔리지만 계정 잔액 틀어진 것도 지적해서 수정 다 했잖아.
그래서 회계감사인은 현장에서 철수했어도 연마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