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외국어 '영어' 이야기

당신의 첫 번째 외국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by 세니seny

내가 가장 처음 접한 외국어는 영어다. 이런 영어를 처음 접하게 된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먼저, 집에 있던 영어 단어 카드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why 시리즈와 비슷한 만화로 된 백과사전 시리즈가 있었다. 여러 권의 책 중에 특히 영어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이 있었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모르는 단어도 쉽게 찾아보고 유튜브를 통해 영어를 공부할 수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있었는지 이 책을 수도 없이 읽었나 보다. 얼마나 많이 봤으면 책이 다 뜯어져서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았고 다른 책은 다 버려도 이 책만큼은 버리지 못하겠어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하도 봐서 너덜너덜해져서 테이프로 붙여놓은 책.
이렇게 만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 이 책을 혼자 들춰보고 또 영어 단어 카드를 가지고 놀며 테이프에서 나오는 발음을 듣고 따라 유난히 'R' 발음을 찰지게 하더란다. 그걸 들은 엄마가 나의 영어 교육에 눈을 뜬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튼튼영어라는 학습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선생님이 집에 방문해서 교재를 같이 읽고 따라 했다.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에도 나는 혼자 테이브를 틀어놓고 교재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그리고 아침마다 모닝콜 개념으로 선생님이 학생에게 전화를 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말도 안 되는 단어를 붙여가며 선생님한테 한 두 마디 건네는 것이 설레고 재미있었다. 교재도 줄줄 외우고 선생님도 좋았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교재값이 가파르게 비싸졌다.


엄마는 그게 부담이 되었는지 고민을 하다 학습지에 이 돈을 쓸 거면 차라리 돈을 더 보태서 원어민이 있는 학원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원어민과 한국 선생님이 번갈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영어학원에 나를 보냈다.


집에서 혼자 선생님과 공부하던 것과는 달리 학원에 가니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것은 쑥스러웠고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튼튼영어로 기초를 다지고 간 덕에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학원을 몇 달간 다니다 보니 맨날 옆자리에 앉는 친구들이 고정되었고 그 친구들과 학교 친구만큼이나 친해져서 중, 고등학교 때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Sarah와 Kate, 잘 지내니? 무엇보다 영어학원은 내가 원해서 간 곳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다.


그리고 나는 또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정말 딱인 곳이었다. 그런데 특목고였던 외고는 입시경쟁이 치열해서 필기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사람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 내가 영어 공부를 좋아한 다곤 했지만 회화 학원에서 느긋하게 공부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입시식 공부에는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영어를 비롯해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시험까지도 봐야 했다. 나는 교과목 학원에 다니는 것을 극혐 했다. 어려워하는 수학만 따로 과외를 받았고 나머지 과목은 EBS를 통해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어 회화학원 빼고 일반 학원에는 다니지 않았고 앞으로도 다닐 생각도 없었는데 졸지에 팔자에 없는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주말에도 학원에 나가 하루종일 수업을 들었다. 나 말고도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수학 점수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입학시험에서는 탈락했다. 그리고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외고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외고 준비를 위해 공부를 했던 것이 수능공부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토익, 토플 시험을 볼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수준의 수능영어를 커버할 수준은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더 어려워진 영어 공부를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가 1등급이 나온 것도 아니지만. 하하하.


나는 중학교 3학년 말 무렵부터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국내에 1~4권까지 번역이 돼서 나와 있었고 조앤 롤링은 5권을 집필하는 중이었다. 그 이후 5권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출간되었다. 영문판으로 먼저 나왔기 때문에 한글로 번역이 되려면 다시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새로 나온 시리즈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드커버로 된 영문판을 구입했다. 외국어로 된 책을 사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번역서 나올 동안 천천히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잘 읽혔다. 이것은 내가 해리포터 마니아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줄거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한글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 영문판을 구입해서 읽었다.


고3이 끝나고 대학교 입시철이 다가왔다. 나는 그전부터 계속 영어영문학과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했던 부모님의 의견은 좀 달랐다. 영문과에 가도 상관은 없으나 어차피 취직을 하려면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해야 할 거라고 했다. 부모님이 나한테 강요한 것은 아니었고 이러이러하니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오셨다. 만약 강요했다면 나는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절대 경영학과에 가지 않았을 테니까.


부모님의 말에는 타당한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외국에 살다 온 사람처럼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단지 영어를 '좋아할 뿐'이었으니까. 경영학과로 입학해 영문과를 복수 전공할 수도 있으니 그 이후의 선택은 나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어차피 영문과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거니까 차라리 차선책인 경영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해 입학하기로 했다.


누군가 그랬었는데 영문과는 말 그대로 '영어로 된 문학'을 배우는 곳이라 했다. 회화수업도 있긴 했지만 주로 고전 시, 근대 소설, 영어 발음 수업 등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수업들도 많았다. 복수전공까지 하려면 학점이 많이 필요해서 부전공 정도로 나의 마음을 끝내기로 했다. 그래도 타과생이 영문과 수업에 자주 들어오니 나를 기억해 주시고 알아봐 주는 교수님도 계셨다. 오히려 주 전공이 아니니까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영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다.






영어를 가장 먼저 접한 이후 일본어 등 다른 외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는 다른 어떤 외국어보다도 오랜 기간 공부해 왔지만 여전히 낯선 외국어인 상태다. 하지만 비교적 늦게 시작한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며 어려움에 빠져 길을 헤매고 하기 싫을 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영어를 익혀온 과정을 내가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리말과 어순이 다른 것부터 이해가 안 됐고 과거형과 과거분사형 등을 익히는 게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 되긴 되더라. 원어민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읽고 있는 지문을 읽으며 바로 직독직해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에서 그래도 영어만큼은 어찌어찌 통해서 그걸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새삼 내가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 번째 외국어이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다가 도망쳐올 곳, 바로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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