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초보운전 표시와 함께 주행을 시작합니다
나는 2종 보통면허를 가지고 있다. 면허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취득했지만 그때는 운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해 운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에 차가 있어서 운전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 차도 있고 이왕이면 운전면허를 땄으니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꾸준히 운전을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몇 번이나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운전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하기 싫은데 엄마의 성화에 떠밀려 마뜩잖은 기분으로 동네 마트나 가까운 곳을 몇 번 운전하다 서서히 운전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면허를 땄다고는 하지만 내 옆을 휙휙 달리는 차들이 무서웠다. 도로에 차가 없으면 혼자서 직진도 잘하고, 차선도 잘 바꿀 수 있었지만 어디 현실 도로가 그런가? 도로의 차량 흐름에 맞춰 속도를 내고 차선을 잘 지키면서 달리되 동시에 적절하게 깜빡이를 켜고 옆 차선으로 들어갈 줄도 알아야 했으며 상황에 맞춰 주차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고 끼어들기를 못해 스트레스를 받으니 운전을 하기가 싫어졌다. 그래도 면허를 따고 몇 년간은 앞으로 운전을 하게 될지 모르니 계속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었다. 하지만 결국 몇 년 뒤에는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아 가족 운전자 보험 명단에서 내 이름은 빠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닌다. 시간을 딱 맞춰서 가야 하는 곳이라면 지하철이 제격이지만 나는 창 밖이 환히 보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몇 년 전, 문득 본격적으로 운전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사와 집은 같은 구 안에 있었고 차로는 5km도 안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그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면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지하철을 타면 버스-지하철 1회 환승, 버스로만 가도 1회 환승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회사에서도 연차가 쌓이면서 급여도 올라 주유비나 차량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차로는 가까운 거리니까 운전을 해서 다니면 출퇴근 시간도 오래 안 걸리고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야근을 하면 회사에서 야근 교통비가 지원되니 택시를 탈 수 있었는데 회사와 집의 거리가 미묘하게 가깝다 보니 택시가 빨리 잡히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운전을 하게 된다면 야근할 때 택시 잡을 걱정도 없어지고, 집까지 편하게 그것도 늦은 밤의 도로는 길도 안 막히고 차도 많지 않으니 편한 마음으로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운전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2019년의 새해 목표로 '운전하기'를 정했다. 그런데 당시 회사 사무실이 임대료 절감을 이유로 근처에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이전하려는 중이었고 최종 결정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원래는 이전 후보지로 바로 회사 근처만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최종 이전 위치가 저 멀리 강남 어딘가로 결정되었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한 이유 중 하나는 집과 회사의 거리가 가까워서였는데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란 말인가. 그렇게 회사가 갑자기 멀리 이전하는 바람에 운전을 다시 시작했던 이유는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다 보니 운전을 했을 때 여러 이점이 나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먼저 혼자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음악 들으며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데 운전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게다가 자전거 타기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운전을 하면서 음악 듣기는 날씨가 춥던 덥던 비가 오던 다 가능했다.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면-특히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택시를 부를 수도 있지만 택시가 오지 않거나 운전할 줄 아는 부모님이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일 때 나라도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또한 시골에 여행 가서 배차간격이 한참인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제주도 같은 곳에서 차를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곳을,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기에 이번에는 운전을 제대로 시작해서 내 걸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20년 운전경력에 빛나는, 뭐든지 설명을 잘해줘서 선생님을 했으면 참 잘했을 우리 엄마를 운전 선생님으로 모시고 운전연수를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 한 바퀴부터 시작했다. 같은 블록을 크게 몇 번을 돌고 돌았다. 사실 주행의 어려움보다 차를 다시 가지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는 게 난관이었다.
차를 몇 번이나 앞으로 뺏다 뒤로 넣었다를 반복하며 겨우 차를 넣곤 했다. 그나마 자리가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오래된 아파트였던 우리 아파트 주차장은 자리가 항상 부족했고 시간대를 잘못 맞추면 일렬 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그렇게 매주 주말마다 동네를 돌다 곧 회사가 이전할 거라 소용은 없지만 아직 이사를 가지 않은 회사를 목적지 삼아 운전을 해보기도 하고 벚꽃이 활짝 피기 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길을 따라 이제 막 펴기 시작하는 벚꽃을 감상하기도 했다. 강변북로를 달려 파주와 통일동산에도 가보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도 운전을 해보고 차를 운전해 강화도에 가서 여행하는 기분도 내봤다.
운전한 지 6개월 만에
혼자 운전해서
제주도 여행을 했다.
여행 만족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동안은 교통편에 여행지를 맞췄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대중교통이 닿지 않거나 버스 배차간격이 먼 곳은 가지 않아 아니 가지 못했다. 택시는 트라우마가 있어 웬만하면 타지 않으려다 보니 더 제약이 많았다.
그런데 차를 가지고 여행을 하니 내가 가고 싶은 곳만 쏙쏙 골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는 제주시 시내를 제외하고는 차가 많지 않은 편이라 운전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바닷가를 한쪽에 끼고 운전하는 기분은 최고였다. 관광지에 가도 주차장이 크게 붐비지 않아 주차하기가 쉬웠다.
나는 2년째 초보운전자 스티커를 붙이고 주행 중이다. 여기서 요즘 드는 의문 한 가지. 초보운전자 딱지는 언제까지 붙이고 다녀야 할까? 보통 초보운전자의 기준은 '1년'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기는 하다.
사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있으면 많은 차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가뜩이나 운전 못하는 것도 속상하고 스트레스인데 대놓고 무시를 당하니까 처음엔 기분이 많이 상했었다. 그래도 운전을 조금씩 반복하다 보니 지난주보다는 이번 주에 조금 더 나아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보운전자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못된 운전자들도 있었지만 내가 어설프게 끼어들려고 할 때 길을 틔워주거나 아니면 내 앞으로 끼어들고 비상등을 깜빡여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차들 또한 같은 도로에 있었다. 희한하게 깜빡이로 고마움을 표시받고 나면 오늘 다른 운전자에게 화났던 마음이 풀렸다.
운전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족한 초보운전자라고 느낀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초보운전자라고 느끼지 않을 때 초보 운전자 딱지를 뗄까 한다. 아주 클래식한 노란색 초보운전 표지를 붙이고 다니면 여전히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운전이 능숙해졌기 때문에 처음만큼 주눅 들어있지 않는다.
누군가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오히려 내 차를 더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초보운전 시절을 떠올리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달라는 부탁의 표시다. 그리고 다른 운전자들에게 괜히 내 차와 가까이 붙어있다가 운전이 미숙한 나에게 당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피해 가라는 의미까지 아직까지는 이 두 가지 마음을 모두 전달하고 싶다.
교통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내고, 규칙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불가피한 상황이 생겼을 때는 비상등을 켠다거나 하여 신호를 주고 나도 양보를 하고 양보받았을 때는 반드시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는, 처음 운전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는, 그런 초심 운전자가 되리라 다짐하며 나는 오늘도 시동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