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넘치는 그 순간이 제일 경계해야 할 순간
자동차 운전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에게 과연 언제 초보운전 딱지를 떼야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꽤 많은 모양이다. 나도 몰랐었는데 내가 올렸던 이 글(초보운전 표시는 언제까지 달아야 할까? : https://brunch.co.kr/@lifewanderer/89)이 내가 올린 글 중 조회수 top 5 안에 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보운전자 표시를 얼마만큼 혹은 언제까지 부착해야 한다는 것이 법에 나와있지 않다. 일단 초보니까 붙이긴 붙였는데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럼 언제쯤 이걸 떼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시점이 발생한다.
누구는 더 이상 초보라고 무시당하기 싫어서가 그 이유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나 정도 운전하면 초보운전자 표식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과 자신감의 발로에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후자의 이유로 2년 만에 초보운전자 딱지를 뗐다. 처음 이걸 붙였을 땐 내가 초보라고 다른 차들이 무시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빴으나 그것도 잠시였고 오히려 나 같은 초보랑 얽혀서 사고 날까 봐 알아서 피하거나 양보해 주는 차들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운전을 10년 넘게 했는데 초보운전 딱지를 계속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느 시점에선 판단을 내려야 했다.
마치 어느 시점이 되면 부모님의 품을 떠나야 하는 것처럼, 어느 시점이 지나면 초보운전자 딱지를 떼어내야만 한다. 안락함을, 나를 보호해 주는 보호막을 벗어나야 한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고, 알은 곧 세계인 것처럼.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서 아이라는 알을 깨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래서 그 시점이 왔다고 판단한 나는 초보운전 딱지를 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초보운전 딱지를 떼고
처음으로 운전을 한 날.
바로 그날,
자그마한 사고가 있었다.
초보 운전자 딱지를 떼고 처음 운전을 한 그날은 회사에 차를 가지고 간 날이었다. 그날 오후에 휴가를 냈는데 어딘가를 가야 해서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회사에 출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가끔 주말 출근할 때나 일이 있어서 회사에 차를 가지고 온 적이 있었고 이제 초보운전 딱지도 뗐으니 괜찮겠지, 싶어서 자신만만하게 차를 운전해서는 무사히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출근했다.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주차장으로 가서 요금 정산을 하고 차를 빼려고 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나가려는 방향과 차를 반대 방향으로 대놨기 때문에 일단은 차를 그 자리에서 앞으로 빼고 다시 후진해서 차를 서서히 돌리려고 했던 그때였다.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자신감 있게 핸들을 휙휙 돌렸는데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꽤 큰 소리였다.
처음엔 다른 차에서 난 소린가? 했는데 주위에 돌아다니는 차가 없었으므로 분명 내 차에서 난 소리 같았다. 엔진이 터진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앞에 있는 본넷에서 아무런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와 충돌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딪힐 건 인도에 있는 아스팔트 정도밖에 없는데 내가 핸들을 돌린 위치 가 아스팔트랑은 닿지 않는 위치였기 때문에 이상하네,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알고 보니 아까 요금 정산을 해준 관리인 아저씨가 내 차 뒤쪽에 정지해 있던 차를 내가 차를 뺀 자리로 옮겨오려고 내가 차를 빼자마자 그대로 직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나간 자리가 당연히 비어 있는 상태니까 백미러로 확인하지도 않고 거기서 차를 돌리려고 앞으로 잠깐 뺏다가 다시 후진해서 차를 다시 그 자리로 집어넣는 과정에서 두 차가 부딪힌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놀란 관리인 아저씨도 차 밖으로 나와서는 툴툴대기 시작했다. 다만 퍽, 소리가 난 것에 비해 차는 거의 긁히지 않은 것 같았다. 날이 밝아서 잘 안 보였을 수도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보험사에 연락해야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차를 몰고 정해진 시간까지 어딘가를 가야 했고 겉으로 보기에 차는 크게 긁히지 않은 것 같았다. 보험사를 부르면 분명 부모님한테도 말해야 하고 일이 커질 거 같았다. 나나 그 아저씨나 어디 다친 곳도 없었고. 어차피 오래된 차인데 또 조금 긁히면 어때.
관리인 아저씨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가 다 잘못한 거 마냥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그에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차가 별로 긁히지 않은 것 같으니 그냥 가겠다고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초보 운전자 딱지를 떼자마자 접촉사고라니. 사람은 자만하는 순간 큰코다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또 배우는 거겠지. 다행히 그 때로부터 10개월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는 작은 접촉사고 하나도 없었다.
다음에 만약 이런 사고가 생긴다면, 그땐 꼭 보험사에 신고하고 상대방한테도 한마디 따져야지. 그리고 그전에 이런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만반을 대비해 차를 빼기 전에 내가 차를 돌리고 나갈 거라고 꼭 언질을 줘서 최대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로 다짐했다.
초보운전자에서 막 벗어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지들에게 한마디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여러분,
초보 운전 표식을 떼는 건 좋지만
첫날엔 더! 긴장하세요.
자신감 넘치는 그 순간이
사고가 제일 발생하기 쉬운
순간이니까요.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