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생각보다 많은 친구를 가진 행운을 얻었다. 어찌 보면 참 피곤하고, 부족한 나란 사람 옆에서 지금까지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그런데 요즘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많은 친구 중 나의 단짝 친구는 누굴까. 언제든 나의 속내를 편하게 꺼낼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나를 아껴주는 친구. 잠시 스쳐 가는 얼굴은 있는데, 딱 떠오르는 친구는 없다. 한때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게도 '앤과 다이애나'와 같은 영혼의 단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 사랑하는 소설, 빨간 머리 앤은 총 열한 권의 책이다. 내가 읽은 두 권의 이야기 후에 앤과 다이애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영혼의 단짝 같은 건 책에서나 나오는 말이지, 애도 아니고 웬 단짝 타령이냐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허물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친구. 눈빛만 봐도 알 것 같은 친구. 별거 아닌 일에 오해하고 토라지지 않는 친구.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나도 걱정이 앞서지 않는 친구.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질투하기보다,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친구.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도 존중할 줄 아는 친구. 기쁠 때든, 슬플 때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친구.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친구.
쓰고 보니, 꼭 이상형 월드컵 하나란 생각도 든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이 최고의 친구까지 되어준다면 좋겠지만, 친구만이 채워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성인이 되면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학창 시절에 사귄 친구와 인연을 유지하지, 성인이 되어 사귄 친구와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이다. 학창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겼다. 그만큼 친구들도 변했고, 자연스레 우리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어른의 삶은 외롭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갈수록 진정한 친구가 더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가며 얻은 지혜로, 현재의 나와 진심으로 통하는 친구를 만들기 좋은 시기인 것 같다. 하나의 걸림돌은, 어른의 삶에는 그런 친구를 만날 기회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단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생각을 하고, 익숙한 관계를 찾는다. 무엇이든 편견 없이 시작하고 알아가기에, 두려움이 앞서고 생각이 많아져 버렸다.
나 역시 영혼의 단짝을 만나고는 싶지만, 이제는 어디서 어떻게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관계에 먼저 벽을 치고 회피하던 시절, 놓쳤던 인연들도 생각난다. 실은 영혼의 단짝이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여전히 벽을 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나도 인생의 하나뿐인 다이애나를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앤과 같은 친구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영혼의 단짝을 만났을 때 앤처럼 단번에 알아보고, 따뜻한 정을 듬뿍 내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