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평등을 말하는가
“북한은 평등한 나라야.
“모두가 똑같이 가난하게 사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래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불 꺼진 북한 전역,
그리고 유독 밝았던 평양의 위성사진.
누구나 가난한 듯 보였던 나라에도
특권은 존재했고,
그 특권은 가장 은밀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나눴다.
북한에서 평양 시민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출신 성분, 충성도, 직업군, 가족 배경까지
국가가 허락한 사람들만 평양에 산다.
그들은 배급을 먼저 받고,
전기 공급이 안정적이며,
외화가 드나드는 곳과도 가장 가깝다.
평양은
‘공산주의 속의 특권화된 구역’이자,
보이지 않는 신계급 도시다.
한국은 다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북한과는 전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강남을 지나칠 때,
청약 커트라인을 볼 때,
입주민만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을 볼 때
가끔은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곳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질서로 움직이고,
나는 그 구역 바깥에 머문다.
공산주의적 철학, 자본주의적 불평등
재미있는 건
이런 귀족화가 ‘평등’을 외치던 정부 아래에서
더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집값을 낮춘다며 규제를 가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공공임대를 늘린다고 했지만
결국 결과는
‘강남은 더 강남다워졌고,
그 외의 지역은 더 주변화’되었다.
즉,
정책의 의도는 평등이었지만
현실은 더 깊은 분리와 불평등으로 돌아왔다.
평등은 결과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모두가 임대에 살면 평등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말이다.
진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동일함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더 이상 공평하지 않다.
정보, 속도, 조건, 배경…
그 모든 것이 기회의 문을 결정한다.
우리는 ‘말하는 평등’과 ‘실제의 계급화’ 사이에 있다
북한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출신과 배경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하면서도
‘누구나 기회가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말과 현실이 어긋나는 지점,
그곳에 계급이 생긴다.
평등을 말할수록, 누군가는 더 올라간다
정책은 말한다.
“투기를 막겠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기회는 공평해야 한다.”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더 분주해졌고,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조용히 웃었다.
정책의 변화가
기득권에게는 ‘기회’,
일반인에게는 ‘혼란’이 되었던 시간.
그 시차가,
결국 강남과 강북을 가르고,
자산과 무자산을 갈랐다.
오늘의 질문
‘평등’이라는 말, 요즘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