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위축되었을까

시스템과 분위기, 그리고 나의 선택

by LIFOJ

사람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계속 뒤처지는 기분이에요.”

그 말엔
단순한 불만이나 원망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
막연한 죄책감,
이유 없는 자책,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위축감.

나는 그것이
사회 분위기, 시스템, 제도, 문화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아챈다.

“너는 안 돼.”
“넌 이 계층 아니야.”
“여기까지만 기대해.”

이런 말은 아무도 직접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눈치챈다.

청약 가점,
대출 조건,
세제 혜택,
취업 스펙,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결합.

시스템은 말없이 구획을 나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자산 격차가 위계가 되고

위계가 정서가 된다

집값이 나를 평가하지 않는데
나는 집값 앞에서 움츠러든다.

재산이 인격은 아닌데
내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어딘가 당당하지 못하다.

그 감정이 하루 이틀 쌓이면,
그건 곧 정체성이 된다.

“나는 원래 이만큼까지야.”
“내가 뭘 더 바란다는 게 웃기지.”
“어차피 안 되는 거지 뭐.”


‘욕망하지 않는 척’하며 살아가는 사회

요즘은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
“그건 투기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자산을 늘리고 싶다고 하면
“탐욕스럽다”는 시선이 따라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망하지 않는 척한다.
꿈꾸지 않는 사람인 척한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게 현명한 것처럼
스스로를 설득한다.


시스템은 무겁고, 사회는 빠르며

나는 그 사이에서
자꾸만 작아진다

정책은 바뀌고,
경제는 요동치고,
기준은 불투명하고,
기회는 자주 바뀐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는다.

원래 어떤 삶을 원했는지,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나는 어떤 가치를 믿는지.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서 멈추지 말고,
“나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시스템이 바뀌지 않아도
태도를 바꿀 수 있고,
사회 분위기가 무겁더라도
내 내면의 목소리는 바꿀 수 있다.

크지 않아도 된다.
단단한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위축된 마음 위에 다시 올릴 단어,

‘선택’

세상이 정해놓은 삶의 방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의 리듬.

눈치 보며 타협한 길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다시 나를 나답게 만들 것이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일까?
아니면 더 명확한 ‘내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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