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개미 탓하지 마라.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정부가 2025년 하반기에 단행한 시장 개입을 복기해 보자.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말 종가 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원화 약세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고 있는데, 당국은 파도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모래성 무너지는 것 막기에만 급급했다. 더 가관인 건 그 화살을 애꿎은 곳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해외로 눈을 돌린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을 향해 '국부 유출' 운운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꼴이라니. 시장의 생리를 아는 이들이라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장면이다.
원화가 이토록 처참하게 밀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대외 신인도의 추락, 해외 투자자들의 냉담한 외면, 그리고 표심만 바라보며 질러댄 포퓰리즘적 돈 풀기 정책이 그 핵심이다.
이걸 경제 전문가, 언론, 정치권, 그리고 금융 당국자들이 모를까? 절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입을 열지 않을 뿐이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색채를 부정하기 싫어서, 혹은 대세에 지장을 주기 싫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지식인들의 비겁한 합리화가 시장의 병증을 키우고 있다.
단언컨대 고환율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치솟을 것이다.
혹자는 수출 중심 국가니까 환율이 오르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일부 수출 대기업의 장부상 이익은 찍힐지 몰라도, 그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수입 물가 폭등은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결국 후진국형 양극화 현상을 고착화시킨다. 부자는 앉아서 자산을 불리고, 서민은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지금 사람들은 미친 듯이 부동산과 해외 주식에 매달린다. 이른바 '패닉 바잉(Buying)'이다. 돈의 가치가 쓰레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나만 '빈(貧)'의 영역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만든 생존 본능이다.
문제는 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심이 시장을 넘어 정책 입안자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는 점이다. 시스템 전체의 회복이나 건전화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당국자들은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누더기 같은 미봉책만 남발한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고통스럽기에 외면하고, 덕지덕지 막기에만 급급하다. 선장이 구명보트부터 챙기는 배에서 승객들이 각자도생하는 꼴, 그것이 지금 우리 외환 시장과 정책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