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내부자 시각에서 본 ‘작은 이야기들’(7)

유니콘의 환상, 그리고 '밸류에이션(Valuation)'이라는 독배

by LIFOJ

우리는 흔히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Unicorn)’이라 부르며 칭송한다. 언론은 연일 어느 핀테크 스타트업이 수백억의 투자를 유치했다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하지만 그 화려한 숫자놀음 뒤에 감춰진, 창업자들의 목을 조르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난 글들에서 나는 핀테크 업체들이 왜 범죄 자금의 유혹에 빠지고, 검은 돈의 통로가 되는지 고발했다. 도덕성이 부족해서?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성장’이라는 이름의 괴물, 바로 ‘밸류에이션(Valuation)’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편에서는 스타트업을 혁신의 주역에서 범죄의 공범으로 타락시키는 자본 시장의 잔혹한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1. 숫자가 지배하는 세상: 죽음의 레이스, 시리즈(Series) 투자

스타트업은 투자를 먹고 산다. 시드(Seed)에서 시작해 시리즈 A, B, C로 이어지는 투자의 단계는 마치 레벨업 게임과 같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전 단계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만약 기업가치가 제자리걸음이거나 떨어진다면(Down-round), 그것은 곧 시장에서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문제는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근거’다. 기술력이나 미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VC)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자극적인 지표는 오직 하나, 바로 ‘거래액(GTV, Gross Transaction Value)’이다.

“지난달보다 거래액이 20% 늘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창업자들은 영혼을 판다. 수익(Revenue)은 나중 문제다. 일단 거래 규모가 커야 ‘시장 지배력’이 있어 보이고, 그래야만 다음 라운드의 투자를 받아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악마의 유혹: “깨끗한 1억보다 더러운 100억이 낫다”

여기서 핀테크 해외송금 업계의 비극이 시작된다. 정상적인 외국인 노동자의 소액 송금만으로는 투자자들이 원하는 폭발적인 성장 그래프(J커브)를 그려낼 수 없다. 마케팅 비용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성장은 더디다.

이때 창업자의 눈앞에 검은 돈의 유혹이 어른거린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 세탁, 불법 환치기 업자의 대량 송금, 가상화폐 차익 거래(김치 프리미엄) 자금….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루에 수십억 원씩 송금해 준다.

정상적인 고객 1만 명을 모으는 것보다, 범죄 조직 하나와 손잡는 것이 거래액 그래프를 올리는 데 훨씬 효율적이다. 투자자들은 묻는다. “이번 달 거래액 왜 이렇게 급증했나요?” 창업자는 답한다. “마케팅 효율이 좋았습니다.” 둘 다 안다. 그것이 거짓말이거나, 지속 불가능한 거품이라는 것을. 하지만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 밸류에이션을 올리기 위한 ‘침묵의 카르텔’은 유지된다.


3.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는 사치다

내부 직원들이 “이 거래 이상합니다”, “자금세탁 같습니다”라고 보고해도 경영진이 묵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컴플라이언스 팀이 제대로 작동해서 의심 거래를 다 걸러내면, 그날로 회사의 거래액은 반토막이 난다. 거래액 급락은 곧 투자 실패로 이어지고,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윤리는 사치가 된다. “일단 살고 봐야지.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그때 정리하자.” 이것이 수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다. 하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한번 검은 돈에 맛을 들인 회사는 마약 중독자처럼 그 자금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체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4. 엑시트(Exit)를 향한 폭탄 돌리기

이 위험한 질주의 끝은 어디일까?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들의 목표는 ‘상장(IPO)’이나 ‘매각(M&A)’을 통한 엑시트(Exit)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도, 겉보기에 화려한 거래액 지표를 포장해 더 비싼 값에 팔아넘기면 그만이다.

결국 그 폭탄을 떠안는 것은 뒤늦게 들어온 후속 투자자, 영문도 모르고 서비스를 이용한 선량한 고객, 그리고 혁신이라는 허상에 속은 우리 사회다. 각종 핀테크 스캔들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무리한 밸류에이션 펌핑(Pumping)이 필연적으로 낳은 괴물들이다.


5. 에필로그: 유니콘의 뿔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6편과 7편을 통해 나는 핀테크의 타락 과정을 설명했다. 중국 자본의 침투도, 불법 자금의 세탁도, 결국은 ‘성장’이라는 숫자에 매몰된 결과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짜리 회사인가(Valuation)”를 묻기 전에, “어떤 돈을 버는 회사인가(Quality)”를 물어야 한다. 유니콘의 뿔이 혁신의 상징이 아니라, 범죄와 타협해 쌓아 올린 사상누각이라면, 그 뿔은 우리 금융 시장을 찌르는 흉기가 될 뿐이다.


[다음 편 예고]

8편: 침묵하는 감시자들, 그리고 은행의 이중성

핀테크 업체들이 이렇게 활개 칠 동안, 감독 당국과 시중 은행들은 과연 몰랐을까? 다음 8편에서는 핀테크의 일탈을 알면서도 방관했던 금융 당국의 늦장 대응과, 핀테크 업체에 가상계좌를 열어주고 수수료를 챙기며 뒤로는 ‘리스크 회피’에만 급급했던 은행들의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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