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개입이 우리의 달러 곳간을 털어가는 냉혹한 메커니즘
달러/원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 뚝 꺾이는 때가 있다. 언론은 이를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경계감'이라 부른다. 환율 급변동을 막기 위한 당국의 합법적인 시장 개입이다.
뉴스에서는 이를 정부의 든든한 방어력처럼 묘사하지만, 외환시장 실무자의 눈에 이 개입은 시장의 안정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시장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비틀어버리는 '위험한 왜곡'의 시작일 뿐이다.
1. [착시] 억눌린 용수철은 더 강하게 튀어 오른다
환율은 경제의 체온이다. 열이 난다는 것은 몸 안에서 염증과 싸우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수급의 결과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이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그저 온도계만 얼음물에 담가 숫자를 내리는 강력한 해열제와 같다.
해열제 기운이 떨어지면 열은 더 무섭게 치솟는다. 시장의 거대한 파도를 인위적으로 짓누르면, 그 압력은 용수철처럼 억눌려 있다가 결국 한꺼번에 폭발한다. 억지로 막아둔 댐이 한계 수위를 넘겨 무너질 때의 파괴력이 훨씬 큰 법이다. 정부의 개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폭발을 뒤로 미루는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2. [소모] 밑빠진 독에 피 같은 달러 쏟아붓기
이 시간 끌기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국가의 비상금인 외환보유고를 헐어 시장에 달러를 내다 판다는 뜻이다.
가계부가 만성 적자인데,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서 당장 겉보기만 번지르르하게 유지하는 것과 같다. 국가의 달러 곳간을 열어 시장의 거대한 수요를 막아내는 것은 애초에 승산이 없는 소모전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 국가의 외환당국이 가진 '총알'은, 전 세계 투기 자본들이 굴리는 막대한 자금력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표적] 투기 자본에게 쥐여주는 가장 완벽한 패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정부의 개입 자체가 역설적으로 글로벌 투기 자본의 완벽한 먹잇감이 된다는 점이다. 당국이 특정 환율(예: 1,400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방어에 나서는 순간, 투기 세력들은 웃음 짓는다.
포커판에서 상대방이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언제 얼마의 돈을 베팅할지 미리 알려주는 격이다. 헤지펀드들은 당국이 어디서 달러를 쏟아낼지 뻔히 알기 때문에, 그 방어선이 뚫릴 때까지 집요하게 원화를 내다 팔며 공격한다. 결국 당국이 쏘아 올린 값비싼 달러 총알은 투기 자본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훌륭한 수익원이 될 뿐이다.
4. [순리] 거대한 파도를 맨몸으로 막을 순 없다
밀물과 썰물의 방향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 결국 환율은 펀더멘털과 글로벌 자본의 이동이라는 거대한 순리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이라는 합법적 왜곡은 잠시 시장을 속일 수는 있어도, 추세 자체를 꺾을 수는 없다. 인위적인 개입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그 개입이 소진시키고 있는 우리 경제의 진짜 체력을 직시해야 한다. 단말기의 숫자를 억지로 지우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는 근본적인 생존력을 기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