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 내 월급이 합법적으로 털리는 중

고환율은 대기업만의 축제인가: 낙수효과의 처참한 종말

by LIFOJ

환율 1,400원 시대, 경제 뉴스는 연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의 역대급 영업이익을 속보로 쏟아낸다. 달러를 비싸게 바꿀 수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장부상 환차익만 수조 원을 챙겼다는 축포가 터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낡은 경제학 논리가 고개를 든다. 대기업이 돈을 쓸어 담으면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 결국 서민 경제에도 온기가 돌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막대한 달러는 결코 평범한 사람들의 지갑으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대기업의 화려한 샴페인 타워 밑바닥에는, 그 축제의 비용을 조용히 대납하고 있는 철저한 희생양들이 존재할 뿐이다. 구체적인 자금의 흐름이 이를 증명한다.


1. [단절] 달러 통장에 갇힌 샴페인, 흐르지 않는 돈

낙수효과가 성립하려면 위에서 넘쳐흐른 부가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대기업이 미국에 차를 팔아 벌어온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서 국내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를 올려주거나 직원들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려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의 자금 흐름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수출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대기업들은 이 돈을 굳이 원화로 바꾸지 않는다. 환율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며 기업용 달러 예금 통장에 그대로 쌓아두거나, 더 높은 마진을 위해 아예 미국 텍사스에 공장을 짓는 데 달러를 쓴다. 맨 꼭대기의 샴페인 잔은 넘쳐흐르는데, 그 아래로 이어지는 밸브는 녹슬어 꽉 막혀 있다. 윗물이 아무리 고여도 아랫물은 말라죽는 기형적인 구조다.


2. [전가] 동네 빵집과 주유소에서 결제되는 대기업의 축제 비용

대기업이 환차익으로 축제를 벌이는 동안, 그 축제의 청구서는 정확히 서민들의 일상으로 배달된다. 환율 1,400원은 수입 물가의 폭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에서 소금빵을 굽는 작은 빵집을 생각해 보자. 빵을 만들려면 수입산 밀가루와 프랑스산 버터가 필요하다. 1,000원에 사 오던 원자재를 1,400원 주고 사 와야 하니 빵집 사장은 턱밑까지 차오른 조달 비용에 비명을 지른다. 결국 버티다 못해 3,000원이던 소금빵 가격을 3,500원으로 올린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아반떼 차량에 기름을 넣는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전량 수입해 오는 기름값은 환율의 직격탄을 맞는다. 5만 원이면 가득 채우던 주유비가 6만 원, 7만 원으로 뛴다.

이들이 추가로 지불한 빵값 500원과 주유비 1만 원이 바로, 수출 대기업의 영업이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대납하고 있는 환율 방어 비용이다.


3. [계급] 원화 월급쟁이들의 합법적인 벼락거지화

이제 환율은 단순한 거시 경제 지표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거머쥔 수출 대기업과 소수의 달러 자산가들은 고환율의 파도를 타며 자산을 불린다.

반면, 꼼짝없이 원화로만 3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원화로만 생활해야 하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벼락거지가 된다.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마트에서 사는 식용유, 수입 소고기, 아이들 장난감 등 모든 수입 공산품의 가격이 20~30%씩 뛰어버리기 때문이다. 고환율은 달러를 가진 자가 원화에 갇힌 자의 구매력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서서히 흡수하는 가장 잔인한 부의 이전 시스템이다.


4. [환상] 내 지갑을 태워 얻은 수출 경쟁력이라는 마약

우리는 언제까지 내 돈의 가치가 떨어져야만 물건을 팔 수 있는 가격 경쟁력에 환호해야 하는가. 환율이 올라야만 수출이 잘 된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 산업이 독보적인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세일 판매를 하고 있다는 뼈아픈 반증이기도 하다.

내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수출 호조라는 마약 같은 단어로 포장하는 기만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출 대기업의 영업이익 숫자에 취해 내 지갑의 구매력이 녹아내리는 현실을 방관한다면, 우리는 평생 펜트하우스의 축제 비용을 1층에서 대납하는 삶을 벗어날 수 없다. 단말기의 숫자는 냉혹하게 묻고 있다. 당신의 노동은 지금 어떤 통화로 보상받고 있는가.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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